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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1. 2020

74. <바람의 저편>

원제: The Other Side Of The Wind
감독: 오손 웰즈
출연: 오야 코다르, 존 휴스턴, 피터 포그다노비치, 카메론 크로우, 데니스 호퍼
제작연도: 2018

 <바람의 저편>은 2018년 영화인가? 아니면 1970년대의 작품인가? 혹은 오손 웰즈가 사망한 1985년의 작품인가? 넷플릭스에 의해 완성된 오손 웰즈의 유작 <바람의 저편>이 완성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SF 영화나 다름없다. 자금난으로 인해 1970년부터 1976년까지 간간히 이어지던 촬영은 무수한 8mm, 16mm, 35mm 필름을 남겼다. 오손 웰즈는 이 영화의 편집을 끝마치지 못했고, 40년 가까이 세계 각국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몇몇 필름은 사운드가 유실되었다. 넷플릭스가 본편과 함께 공개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 <40년 만의 파이널 컷>(2018)과 <오손 웰즈의 마지막 로즈버드>(2018)은 <바람의 저편>이 제작된 과정을 보여준다. 후자는 <바람의 저편>을 제작하기 위해 오손 웰즈가 세계 각국의 제작사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해 노력하고, 오손 웰즈의 작품 세게 전반을 훑으며 <바람의 저편>의 인트로와 같은 부연설명을 덧붙인다. 반면 전자는 말 그대로 '특별 메이킹 다큐멘터리'이다. "<바람의 저편>은 어떻게 40년만에 완성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이 영상의 목표이다.

 <40년 만의 파이널 컷>은 여러 계약관계에 의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촬영분을 모으고 분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A.I. 기술을 통해 수백시간에 달하는, 게다가 각기 다른 포맷으로 촬영된 필름을 분류한다. A.I.는 이미지 대조를 통해 같은 장면을 여러 테이크를 거쳐 촬영한 필름들을 분류한다. 사운드가 유실된 장면들은 존 휴스턴의 아들이 존 휴스턴의 목소리를 흉내내 재녹음하고, 디지털 기술로 보정한다. 이 모든 것은 오손 웰즈가 죽기 전에 남긴 꼼꼼한 메모를 바탕으로 한다. <시민 케인>(1941)을 제외하면 오손 웰즈가 온전히 편집권을 잡은 영화는 없다. <악의 손길>(1958)이 오손 웰즈가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재편집되고 복원되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바람의 저편>은 그것의 조금 더 난이도 높은 작업이다. 

 40년만에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이게 된 <바람의 저편>은 70년대에는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형식을 지닌다. 영화는 영화 감독 제이크 하나포드가 죽기 전 미완성 작품 <바람의 저편>의 편집본 시사회를 포함해 몇 가지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을 담는다. 이것은 제이크의 사적인 기록을 담은 홈비디오 같기도, 공식석상인 시사회를 촬영한 프로 저널리스트들의 카메라에 담긴 영상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이 영화는 영화 속 영화인 <바람의 저편>의 메이킹 필름이기도 하다. <바람의 저편>에 출연하기도 한 영화 감독이자 비평가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제대로 된 맥락도 파악하기 힘든 수백통의 필름 캔을 A.I.를 동원해가며 결국 완성시켰다. 오손 웰즈의 <바람의 저편>이 40여년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완성되는 과정은 제이크 하나포드의 <바람의 저편>이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채 그것을 둘러싼 과정만을 담은 '파운드 푸티지'로 존재하는 과정과 공명한다. 70년대에 찾아보기 어려운 '파운드 푸티지'라는 형식을 혁명적으로 도입한 이 영화가 호러부터 실험영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에 파운드 푸티지가 도입된 2018년에 도래했다는 점은 <바람의 저편>에 일종이 신화적 SF의 성격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영원히 오손 웰즈 버전의 <바람의 저편>을 볼 수 없다. 그것안 아마도 <시민 케인>을 제외한 모든 오손 웰즈의 영화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시민 케인> 이후 자신의 영화의 편집권을 온전히 가져 본 적이 없다. 우리는 사후세계에서나 진정한 (<시민 케인> 이후의) 오손 웰즈의 차기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의 저편>은 온전한 오손 웰즈의 영화인가? 혹은 그의 메모를 참고하고 그의 촬영분을 사용해 오손 웰즈를 흉내낸 작품인가? 우리는 오손 웰즈를 닮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역시나 영화 감독인) 존 휴스턴을 보고, 피터 보그다노비치 자신과 다름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피터 보그다보비치를 본다. 이 혼란 속에서 <바람의 저편>은 1970년대와 2018년을 넘나들고, 오손 웰즈의 영화와 오손 웰즈를 따라한 영화를 오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40년 만에 파이널 컷(이라고 명명된 것)'을 즐거이 감상하고, 필름이라는 일종의 타임머신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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