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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Mar 05. 2020

80. <이미지 북>

원제: Le livre d'image
감독: 장 뤽 고다르
제작연도: 2018

 장 뤽 고다르의 가장 최근작인 <이미지 북>을 단숨에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120여년에 이르는 영화사는 물론 회화사, 문학사, 심지어 유튜브에 이르는 이미지의 역사를 조각 모음한다. 물론 이러한방법론을 <이미지 북>을 통해 처음 선보인 것은 아니다. 영화사 속 이미지와 회화사 속 이미지를 폭넓게 인용하며 '조각보'와 같은 영화사 쓰기를 선보인 <영화의 역사(들)>(1988~98)는 물론, <필름 소셜리즘>(2010), <언어와의 작별>(2013) 등에서 아이폰이나 고프로, 심지어는 3D 카메라에 이르는 새로운 실험들의 흐름 안에 <이미지 북>의 형식이 놓여 있다. 고다르는 여전히 비디오데크로 편집을 하고 있고, 그것은 <이미지 북>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의 비디오데크와 수작업 속에서 영화, 회화, 문학, 유튜브, 각종 카메라를 경유하는 이미지들은 그 출처나 형식과 상관 없이 이미지이다. 

 <이미지 북>이 가장 처음 보여주는 것은 손의 이미지다. 다섯 개의 손가락을 모아 위쪽 방향으로 쭉 뻗고 있는 이 이미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세례 요한](1513~16)에서 따 온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번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이 이미지는 복사기로 수차례 반복하여 복사를 거듭한 이미지마냥 너덜너덜하다. 이 손의 이미지는 '1. 리메이크', '2.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저녁들(파티들)', '3. 여행의 혼란스러운 바람 속에, (기차) 레일 사이의 꽃들', '4. 법의 정신’, '5. 중앙 지역'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다섯 챕터와 함께, 비디오데크로 영화를 편집하는 고다르의 손으로 흐른다. 고다르의 편집하는 손은 <영화의 역사(들)>에서도 주요하게 등장한 바 있다. 이후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9),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1941),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 <전화의 저편>(1946), 장 비고의 <라탈랑트>(1934),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2),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2003), 막스 오퓔스의 <쾌락>(1952) 등을 인용한다. 사실 몇몇 영화들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시민 케인>과 같은 경우엔 오프닝 시퀀스에 등장하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확대해 삽입했기에, 이것은 감옥이나 수용소 등에서 사용된 표지판과 단숨에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 여러 저널, 방송, 유튜브 등에서 수집한 이미지들이 영화에 인용된다.

 <영화의 역사(들)>은 영화나 회화의 이미지들을 조각내고 이어 붙이며 이미지들 간의 충돌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이미지 북>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이미지 북>은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불꽃에 더욱 집중한다. 그리고 이것은 고다르의 영화가 도착한 지점이라기 보단, 프렌치 누벨바그로 시작해 68혁명과 지가 베르토프 그룹의 혁명에 대한 영화들, 냉전과 기술의 발전사를 경험하며 자신의 영화를 계속 변화시켜온 일종의 흐름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미지 북>의 러닝타임 중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5부 '중앙 지역'은 아랍의 봄 이후 민주주의 정권 대신 ISIS가 들어온 중동의 이미지들을 가져온다. 그가 직접 촬영하기도 했고, 중동 지역의 영화를 유통하는 이들로부터 직접 구매한 영화 속 이미지들로 구성된 5부는 이미지 텍스트의 포화상태 속에 파묻힌 의문들, 가령 텍스트뿐인 혁명, 이미지의 폭격 속에서 비가시화되는 학살과 폭력, 수많은 조약 사이를 비집고 기어코 벌어지는 전쟁 등의 것들을 되살린다. 그가 <이미지 북>을 비롯한 작업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물론 수많은 논의와 맥락,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긴 하나) 의외로 간단하게 요약될지도 모른다. 그는 어쨌거나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미지 북>은 그것의 불씨를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의 충돌실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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