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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이 May 10. 2021

영이에게

필라테스 강사 내 친구

필라테스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하던 운동이었지만 2019년 말 창궐하기 시작한 빌어먹을 바이러스의 여파로 잠시 쉬었고 최근 다시 시작했다.

운동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다이어트의 목적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면서 나는 몇몇 운동들을 거쳤다. 헬스, 스피닝, 자전거 그리고 필라테스.

헬스장에 가서는 러닝을 뛰거나 이곳저곳 나의 작디작은 근육들을 건드려줄 기구들을 움직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따로 트레이닝을 받지 않아서인지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옮겨간 ‘스피닝’이라는 운동은 화려하고도 정신없는 색색의 조명 아래서 심장까지 울리는 댄스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듯 흔드는 재미가 있었지만, 이사를 오면서 마땅히 갈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자전거는 지금도 가끔 서울시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를 2시간에 2천 원을 내고 타고 있다. 비도 오지 않고 미세먼지가 없는 좋은 바람에 기분 전환을 하기에는 딱이지만, 한 여름과 겨울에는 힘들기에 역시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약 3년 전 처음 시작한 필라테스는 내 몸 어딘가에도 숨어 있을 근육들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했다. 일대일 레슨을 처음 받았을 때 한 시간 내내 강사님은 나의 바르지 못한 자세들을 잡아주느라 애썼지만 꽤 고통스러웠다. 물론 이것이 나에게 있어 좋은 효과를 빠르게 가져다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통스러운 집중을 매번 받을 자신도 없거니와 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조금 더 힘이 날 듯하여 그룹 레슨으로 바꾸었다. 효과는 조금 더디겠지만 일단 운동을 하러 갈 의지의 장착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갈비뼈가 닫히도록,

머리를 쭉 뽑아,

날개뼈가 모이도록,

전혀 해보지 않은 뼈를 모으고 닫는 행위들을 느낌대로 따라가면서, 이게 맞는 건가?라는 의문과 함께 나의 온몸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 비뚤어진 듯한 골반도, 유독 힘이 들어가지 않는 부위도 알게 된다.

호흡이 중요해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세요,

마치 명상의 가이드같이 쓰지 않던 근육들에 안간힘을 쓰며 호흡에 집중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생각은 멈춘다.

그날 하루, 회사에서 나를 신경 쓰이게 했던 상사의 말도, 내가 뱉었던 말이 나오지 말았어야 했던 말이었나 하는 유난스러운 걱정도, 아직까지도 막연하기 만한 미래와 같은 사념도 잠시나마 멈출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필라테스라는 운동에 몸보다는 정신적인 이로움에 비교적 꾸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이는 나의 고등학생 시절 친구이다. 그 시절 영이와 나는 서로의 일상이나 고민을 공유할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락이 닿는 친구들 열댓 명이 모일 때 한두 번 다시 만났을 뿐, 이후에는 연례행사처럼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아마 꽤 시간이 지난 후 각자의 사회에 나가 우연히 같은 지역에서 생활 반경이 비슷해졌을 때 심심한 날들에 곧잘 만나며 가까워졌던 것 같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에 새롭게 알아가던 고등학교 친구는 지금 필라테스 강사이다.

 

영이는 대학 졸업 후 약 1-2년을 캐나다와 미국 등지를 날아다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꽤나 유명한 의류 회사에 다녔고, 업무도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을 맡았다. 30대 초반 우리의 주된 고민은 동년배의 그것과 남다르지 않았다. 이 회사를 계속 다녀도 되는지, 연애 사업의 전망은 어떨지, 결혼은 언제 해야 하는지 혹은 할 수 있을지. 연초가 되면 간혹 우리는 사주를 보러 갔고 영이가 자주 듣는 말은 운동이나 예술 쪽을 하면 좋고, 다른 나라로 나가거나 혹은 외국인 남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는 말들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스치는 말이 내가 안고 있던 오랜 고민의 실타래를 한 가닥 잘라주기도 한다. 아마 영이가 고심해온 삶의 방향이 우리가 잠시 만난 그 명리학자의 말과 어느 정도 합의점에 이르렀는지 영이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과 함께 제주도의 외국인이 많이 산다는 동네로 터를 잡는다.

     

이러한 영이의 행보에 비추어 나는 영이에 대하여 꽤 선택에 대한 용기와 책임감 그리고 추진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러한 모든 면이 약한 나에게 영이는 종종 어떤 영감과 도움을 준다.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이별을 한 후에 오랜만에 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미주알고주알 울음 섞인 연애 스토리를 들어주던 영이는 한 마디 던졌다.

너 이제 매일 플랭크 1분씩 하고 인증샷 보내.

속뜻을 알아차린 나는 알겠어, 대답 이후 거의 매일 두 달 이상 1분 이상의 타이머 인증샷을 영이에게 전송했다. 엎드린 자세의 온몸을 팔꿈치와 까치발로 버티는 시간을 1분에서 2분으로 늘려가는 나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업을 3년 이상 해오고 있는 영이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이는 나에게 하루 동안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일상이 너무 단조로워 재미가 없는 (일명, 노잼) 시기를 마냥 받아들이며 그 무엇도 시작하고 있지 않았던 나에게 영이는 또 무언가 던져주었다.

너 글 쓰는 거 좋아하잖아, 그거는 온라인 모임도 많을 것 같은데?

단지 몇 분이 지난 후 영이는 몇 개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금방 나온다.

어쩜 그렇게 나에게 딱 맞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뚝딱해주는지. 이건 영이가 나의 지나가는 말들과 그녀와 했던 소소한 대화들을 잘 기억해주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안 할 수가 없이, 언젠가는 글을 써야지 했던 내가 처음으로 마무리가 있는 글들을 써볼 수도 있게 되었다.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영이는 꼭 그것이 줄 수 있는 이로움을 나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영이가 비교적 늦게 시작한 필라테스 강사의 일을 천직인 마냥 매우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영이는 내 앞에서 무너진 적이 없다. 그래서 영이 앞에서 잘 지어지지 못해 허술한 목조물 마냥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조금 창피할 때도 있다.

나는 네가 힘들 때 나한테 연락해주면 고마워. 나는 그냥 혼자 삭히거든.

그렇게 말하는 영이를 보며, 혼자 뭘 그리 삭히니 그냥 나에게 무너져라 싶다가도 막상 철옹성 같이 지어진 것 같았던 내 친구가 무너져버리면 어색하고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지만 너도, 무너지는 일 따위 없이 그저 계속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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