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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이 May 15. 2021

상관없는 거 아닌가?

feat. 싸구려 커피

내 마음이 지치거나 멍이 들려고 할 때 종종 하는 것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점 앱에 들어가 책 제목들을 쭉 살피는 것이다. 물론 직접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내용까지 함께 살필 수 있다면 베스트이겠지만 보통은 물리적 여유가 여의치 않아 찾은 방법이다. 대부분 에세이집인데, 그것의 제목만으로 위로를 얻을 때가 많다. 간혹 제목에만 끌려 구매로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그리하여 실패한 책이 한두 권이 아닌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로를 건네준 책 제목이 곁에 있음에 완전한 실패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 날 또 인터넷 서점 앱에 들어가 신간의 제목들을 쭉 살펴보던 중 눈에 꽂힌 책 제목이 있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가수 장기하의 산문집이었다. ‘싸구려 커피를 마시던 장기하가 책을 냈구나.’라는 생각과 책 제목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결제 버튼까지 누를 뻔했지만, 생각보다는 좋지 않은 평에 충동구매를 다스릴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꽂혔던 것이 맞았다. 아니, 그 책 제목이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나는 순간순간 이제 나와는 상관없어진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이어 생각이 들이찬 순간 고통스러웠다. 너무 잘 발달한 매체는 굳이 안 봐도 될 사람을 궁금하게도 하였고, 또 너무 쉽게 이제는 몰랐으면 좋은 사람의 가상공간에 접근이 가능했다. 굳이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괴롭혔다. 그렇게 쓸데없고 퀴퀴한 감정에 먹혀들어 자책과 후회의 말들로 머리가 아파질 때 저 말이 떠올랐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앞서 말한 대로 이제는 상관없어진 사람인데, 그 사람이 어떻게 살던 어떠한 근황을 가지고 행동하던 이제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 상관이 없어졌다는 것은 나에게서 버려져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버릴 수 없다거나 괜한 호기심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것도 상관없었다. 완전히 버려질 때가 오리라는 것을 아니까, 상관없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가 지나고 나서부터 나는 소액으로나마 기부를 시작했다. 적당히 잘 운영되고 있어 보이는 기부단체에 정기 후원과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후원 유도 방송 등을 통해서다. 그러한 기부단체에 기부해도 실제 도움을 주고자 한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고 기부단체 배를 불리기에 도움을 줄 뿐이라는 말을 들은 바도 있어 찝찝함은 있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이 행위는 나를 위한 그 무언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한, 인생이 힘이 들다 느껴질 때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매우 이기적인 마음으로 행한 이타적인 행위였다. 그러던 중 어느 유튜버의 기부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의 말인즉, 나를 위한 기부는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기부는 진정으로 타인을 위하는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영상이 어쩐지 내 마음을 들여다본 해주는 조언 같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아동 학대 및 살인 사건인, 일명 정인이 사건은 나의 경우 깊게 파고들면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관련 영상은 하나도 보지 않았다. 이때 내 친구 경이는 정인이 사건 관련 영상의 어느 한 장면이 가슴을 너무 무겁게 짓눌러 한 보육원에 연락했다고 한다. 일대일 후원을 하겠다고 말이다. 일대일 후원은 어쩐지 조금 부담스러워 피하고 있던 나는 결국 경이의 영향을 받아 같은 보육원의 아주 예쁜 어떤 아이를 위한 후원을 작게 시작하였다.

경이도 나도 결국은 우리를 위한 후원을 하게 된 것이다. 나를 위한 기부는 하지 말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결국 상관없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로 인해 마음이 좋아지는 것이 더 나아간 목적이고 이것은 연쇄 작용이다. 그러니 나를 위한 것이든 그들을 위한 것이든 같은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은 ‘다 괜찮으니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말과 같이 들렸다. 일상에서의 사소한 걱정들과 거리낌이 어디 세상이 무너질 일들에 관한 것이던가. 심각해질 필요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웃으며 넘길 여유도 필요하고 ‘상관없지 않나?’라는 말과 함께 가벼이 넘길 일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책은 결국 구매하였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냥 이렇고, 이래도 전혀 상관없지 않습니까?’라고 말을 하는 듯 조금은 괴상한 자세를 하고, 서 있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 모를 인간을 표현한 그림이 있는 표지의 책이 내 옆에 있다. 그리고 중간 정도까지 읽어본바 소소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좋았다.


이 책 제목은 아마도 당분간은, 혹은 꽤 오랫동안 내 삶의 태도가 되고 나를 다독여주는 말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잘하고 싶어서 생긴 욕심들을 내려놓아도 상관없고, 결국 그것을 못 해도 상관없다. 지나간 것들이 그리워 잠시 동안은 과거에 머문 시간이 찾아와도 상관없다. 나에게 상관없는 것들은 상관이 없는 채로 지나갈 것이고, 잊히고, 또 그래도 상관없는 것들을 내 방식대로 해나갈 것이다. 나는 다시 나를 평안한 기분으로 되돌릴 힘이 있으며, 내 기분이 좋을 대로 살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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