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다시 온 곳
5-6년 전 좋은 기회로 3개월가량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는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이라고도 하기는 애매하지만 대학교를 휴학하고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한 연구소 활동의 일환이었다.
연구소에서는 주로 방학 때마다 캠프를 했고, 나는 그 캠프 기간 동안 전체 식사를 도맡아 메뉴를 짜고 요리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때의 시간 덕분에 요리의 스펙트럼도 다양해졌다 싶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한 캠프장에서 생활하며 캠프장 곳곳에 필요한 일들을 했다. 캠프 시즌마다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날에는 주방에서 팬케이크를 굽고 어떤 날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스쿱 가득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어느 날에는 기념품 샵에서 티셔츠를 수도 없이 접었다 폈다 했다. 광활한 캠프장 부지 안에서 우리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감당이 안될 만큼 쌓인 나뭇가지를 줍고 트럭에 실었다. 그렇게 다양한 일들을 하며 캠프를 준비하고 정리했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고된 노동은 늘 끼니를 기다리게 했다. 캠프장 아침도 보통 미국 식사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아침에는 베이글, 팬케이크 같은 빵 종류와 시리얼이 늘 준비되어 있었고, 스크램블 에그와 바짝 구운 베이컨이 있었다. 따뜻한 오트밀도 늘 준비되어 있었다. 점심에는 모두가 각자의 맡은 일을 한 후 모여 먹기 때문에 최대한 간단한 음식 위주였다. 거의 샌드위치나 랩(wrap)이 준비되었다. 토르티야나 빵에 다양한 햄, 치즈, 채소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늘 칩도 함께 있었다. 그런데 이게 훗날 내게 큰 시련이 될 줄이야.
랩에 들어가는 치즈와 햄 종류마저 늘 한결같았고 랩을 일주일 먹고 나니 도저히 물려서 먹을 수가 없겠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햄이고 치즈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다 보니 안 넣다시피 하고, 넣어도 1개 정도 슬쩍 끼워 넣었다. 양상추에는 물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다음 날에 오전 일과를 끝내고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은근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는 알았다. 으악 오늘도 랩이야! 랩! 랩! 랩 언제까지 랩이야! 결국 나는 랩을 거부하는 사태에 이른다. 그러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금 위로가 되었다. 랩에 지친 자(?)들은 어느새 아침에 남은 음식들이 있는 냉장고 문을 열기 시작했고, 거기서 끼니를 해결했다. 어제저녁의 식은 라자냐가 오늘의 점심에서만큼은 위로가 되었다. 어찌어찌 그러다 보니 랩 사태(?)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다양하고도 단조로운 미국식 식사를 하며 느낀 건, 이곳은 참 고효율로 살을 찌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다양한 반찬들을 두고 쌈을 한 입 크게 싸 먹기도 하고, 뭐랄까 젓가락이 조금 더 바쁜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미국에서 한국처럼 젓가락질을 수없이 하다가는 곧 고도비만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를 먹어도 야무지게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음식들이었기에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아니다 생각하며, 한국에서처럼 배부르게 먹을 수 없다고 은연중에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상당히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맛을 가졌어도 적당히 먹으려고 애썼다.
하루는 친구들과 동네에 유명한 피자&아이스크림 가게를 갔다. 피자 조각 자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크고, 미국 피자답게 맛도 좋았다. 오늘도 고효율의 맛이구나, 생각했다. 친구와 나는 많이 먹어도 2조각인데 미국 친구들은 거침없이 피자 한판을 먹어치웠다. 그리고 스쿱 가득 아이스크림까지. 아, 살찌는 이맛. 거부할 수 없는 이 맛. 좋다. 다 이루었다.
한 친구는 감자튀김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문제는 그 친구는 굉장히 마른 친구였다. 축복받은 체질이여. 사과에 피넛버터를 듬뿍 발라 먹는 것도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때는 되게 신기했다. 무슨 맛으로 먹을까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금 심심한 사과를 먹을 때면 피넛버터를 발라먹기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슬프게도 나는 축복받은 체질은 아니기에 아주 가끔 그렇게 먹는다.
함께 일하던 부부의 집에 초대받았다. 호수 옆에 있는 집이었다. 마당에서 그릴에 피자를 구워 먹는다고 했다. 바삭하고 담백하게 구운 피자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초대해 준 그들에게 고마워 그날은 당근 케이크를 구워갔다. 당근 케이크는 아마도 내가 가진 베이킹 메뉴 중 가장 많이 구웠을 거다. 그리고 그만큼 가장 자부하는 맛이다. 아무튼 이들에게 맛있는 당근 케이크를 구워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는데 아차. 그날의 호스트인 리사도 당근 케이크를 구워놓은 게 아닌가. 이런 실례가. 우연의 일치 탓에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리고 유머스러웠던 리사는 한 마디를 더 했다. 누가 만든 케이크가 더 맛있는지 먹어보고 말해줘. 리사의 남편 제임슨은 나의 당근 케이크에 손을 들어줬고, 리사는 살짝 눈을 흘겼고 우리는 또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더 웃겼다. 응 이건 케이크 믹스야. 베이킹의 나라인만큼 믹스도 훌륭했다. 이렇게나.
농구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저녁에 가족들이나 친구들끼리 모여 농구를 보는 게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날에는 자연스럽게 칩이 함께 했는데, 바삭한 식감을 사랑하는 나에게 칩 문화(?)는 사랑이었다.
우리는 쉬는 날 캠프장 어딘가에 모여 그릴 위에 소시지를 구웠다. 핫도그 빵, 노릇한 소시지, 칩, 머스터드소스 같은 것들을 질서 없이 테이블 위에 두고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만들어 먹었다. 미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것들이 뭔가 내 앞에 일어난 것 같았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 마시멜로우를 정성스럽게 구워 먹었다.
하루는 룸메이트 크리스티나가 해먹을 가져왔다. 그리고 베란다에 해먹을 뚝딱뚝딱 설치하더니, 긴 밤 그곳에서 잠을 청했다. 거기 누워 책도 보고, 잠도 자고, 밤에는 별도 보았다. 그런 그녀가 멋있었다.
이런저런 추억이 쌓인 이곳에 7년이 흘러 다시 오게 되었다.
지금은 동네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인만큼 여행객은 없다. 모두가 현지인이다. 난 이런 게 더 좋다.
다른 언어를 쓰지만 스타벅스는 익숙함을 준다. 이래서 세계 어디를 가도 익숙한 곳을 찾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스타벅스가 더욱더 건재(?)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오랜만에 미국 동네 마트를 이곳저곳 다녔다. 얼마만인지.
식재료를 구경하는 일을 사랑하는 나에게 최고의 놀이다. 친구에게 좋다, 아 정말 행복하다. 연신 내뱉는 나를 보며 친구가 웃는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온 지금도 친구는 한 마디로 나를 응원해준다.
"미국에서 하고 싶은 거 다해."
나의 삶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더 잘 살아야겠다고 여전히 결심한다.
삶은 정말 어떻게 흐를지 모른다. 돌아가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들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두려워하지만은 않기로 했다. 꽉 쥐어도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것들은 그렇게 두기로 했다.
어떤 용기가 나를 이곳까지 이끌었듯 이곳에서의 시간들도, 앞으로의 시간들도 어떤 용기가 나를 불러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