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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jonler Jan 13. 2019

지금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2-1


 영화 <더 포스트>는 캐서린이 자살한 남편 대신 회사를 맡아 운영하게 된 이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성 이사진들은 여성인 캐서린이 회사를 맡아 운영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이유밖에 없다고 캐서린의 면전에 대놓고 모독할 정도로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캐서린도 회사 운영 초반에는 자신을 무시하는 남성 이사진들에게 발언권을 빼앗기고 수동적으로 끌려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은 결정권자로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회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립자체가 위험해지는 ‘펜타곤페이퍼’의 후속보도를 앞두게 된 것이다. 이사진들은 후속보도를 내는 것이 모두가 위험해 질 결정이라고 충고한다. 그렇지만 보도를 내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결국, 캐서린은 후속보도를 내기로 결정한다. 남성 이사진들은 이전과 같이 그녀의 결정을 무시한다. 그러나 캐서린은 이제 자신의 말을 가로막는 한 남성 이사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 

 

 ‘설교하는 여자는 뒷다리로 걸어 다니는 개와 같다’며 잘 될 리 없고 잘 된다면 놀라운 일이라며 여성비하가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남성중심사회에서, 한 여성이 한 인간으로 자립하게 된 순간이었다. 결국 그녀의 판단이 옳았고 지역 언론에 불과했던 워싱턴포스트는 뉴욕 타임즈와 함께 유력언론이 되었다. 신념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만큼 캐서린은 강한사람이었다. 여성을 배제하는 사회의 ‘올바른 여성상’에 따라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만 키우며 살았기에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몰랐을 뿐이다. 


 나도 이전까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 당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여성을 규정짓는 사회적 프레임은 그 자체로 큰 불이익이다. 미국의 참정권 역사를 보면 인종의 차별보다 성별의 차별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남성은 1870년에 참정권을 가졌고 그에 반해 백인 여성은 그보다 50년이나 늦은 1920년도에 와서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흔히 인권 문제 하면 흑인을 먼저 떠올리는데 여성인권문제는 차별 받아온 인류 절반의 문제이다. 페미니즘이 양성평등, 즉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고 그동안에 남성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었던 사회구조를 지금이라도 평등하게 재편해 보자는 움직임이라는 것을 이제는 상식처럼 많이들 안다. 하지만 피부로 와 닿는 변화는 미미하다. 


 최근에 나간 독서모임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40대 미혼 남성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바깥사람, 안사람으로 구분 짓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꽤 지식인이었는데, 지식뿐이었다. 

 몇 달 전에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때 제작 반대 청원이 청와대 사이트에 올라오기도 했고 주연으로 캐스팅 된 정유미 배우의 SNS에는 도를 넘는 악플을 다는 이들도 있었다.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는데 그 중 대부분은 정유미 배우가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였다. 나는 이 사실에 더 힘이 빠졌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사회에서 ‘용기 있는 선택’이라는 사실이 우리 현실인 것이다. 한 아이돌 가수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일은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라고 생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남성 팬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여전히 남성들의 인식 변화가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인식을 깨는 여성 스스로의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발언을 가로 막는다면 이제 참지 말고 목소리를 내보면 어떨까. 


그 시작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가 좋겠다.




이미지 출처: 영화 <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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