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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Nov 13. 2020

저번 주말에 나눈 생산적인 대화 Part 2-1.

"난 쓸 수 있어.
난 정말 10조를 줘도 다 쓸 자신있어."


정말이다. 누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대도 나는 다 쓸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창의적으로.


"어떻게 쓸 건데?" Y가 물었다.


"김상천 페스티벌을 열 거야."


"응?"


"김상천 페스티벌."


"김상천 페스티벌?"


"김상천 페스티벌."



시작은 '한 사람이 사는데 평생 얼마의 돈이 있으면 될까'란 질문이었다.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까 액수가 점점 오르다가 한도 끝도 없이 높아졌다. 그러다 조 단위가 됐다. "그건 다 쓰지도 못해." Y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김상천 페스티벌을 열면 된다.


"김상천 페스티벌은 김상천 맘대로 하는 거야. 일단은 락 앤 컬처 페스티벌이야. 라인업은 김상천 맘대로. 내가 좋아하는 밴드 다 부르는 거지. 케미컬브라더스건 아케이드파이어건 다 부르는 거야. 개런티도 두 배로 줄 거야. 뭐 어차피 돈 많으니까."


"그럼 콜드플레이도 불러줘." 2017년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을 갔던 Y가 말했다.


"오 그래그래 부르자. 콜드플레이 좋지. 까짓거 영화도 판권 사서 다 틀자. 초대형 아이맥스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인피니티워 엔드게임 연속상영하자. 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로 틀 거야. 푸드코드? 다 내 맘대로야. 김상천이 좋아하는 음식만 팔 거야. 그래도 곱창은 몇 개 넣어줄게 걱정하지 마."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 Y가 답했다.



역사에 남을 말도 안 되는 라인업을 꾸린다. 그게 시작이다. 글라스톤베리 코첼라 버금가는 라인업. 전세계 곳곳에서 제발제발 오고싶어하며 트윗으로 드립을 치고 그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난리칠 그야말로 환상적인 라인업을 꾸려놓는 게 시작이다.


"우선 취약계층은 다 무료. 한부모, 저소득, 장애, 모든 종류의 취약계층은 다 무료입장이야. 그 사람들한테 가장 좋은 자리를 줄 거야.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프라이빗돔석을 마련해놓고 최고급 샴페인과 산해진미를 끊임없이 갖다 줄 거야."


"오 그건 괜찮네."


"또 살면서 김상천이랑 한 번이라도 말 섞어본 사람은 다 공짜야."


Y는 기가 차다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증빙해? 그리고 그러면 갑자기 너도나도 찾아와서 말 거는 거 아니야?"


"증빙은 나도 몰라, 그런 건 차차 생각하자고. 뭐 돈 많으니까 어떻게 되겠지. 맞아 너도나도 찾아와서 말 걸겠지. 페스티벌 전까지 김상천과 제발 한 마디라도 섞어보고자 난리난리 치겠지. 뭐 까짓거 한 마디씩 말 섞어주지 뭐."


어처구니없어하는 Y의 표정을 보며 내가 계속 말했다.


"여기서 나의 관용을 볼 수 있지. 김상천이랑 한 번이라도 말 섞어본 사람, 이건 나랑 싸운 사람도 된다는 거잖아. 와 이 얼마나 관대하냐. 뭐 다 괜찮다는 거지. 싸운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까짓거 페스티벌 한번 즐기게 해주자고."



말을 하면서 나는 조금 흥분했다. 그래 진짜 부자라면, 정말 돈이 썩어넘치게 많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쩨쩨하게 포르셰 몇 개 사고 건물 좀 사고 부자입네 뭔가 그게. 암 이 정도 창의력은 갖고 써줘야 돈이 안 아깝지.


"이어서 김상천 칭찬 문학상을 열 거야. 상위입상자 1천명 무료입장."


"뭐야 그건 또?" Y가 물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답했다.


"옛날에 네이버 지식인 활성화한다고 내공 쌓으면 자전거 주고 해외여행 보내주고 난리칠 때가 있었거든. 그때 어떤 사람이 자기 칭찬을 가장 듣기 좋게 하는 사람을 채택해주겠다면서 내공 100을 걸었어. 그랬더니 그 내공 받겠다고 수십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모르는 사람 칭찬을 겁나 창의적으로 하는데 그게 너무 웃긴 거야.

'이렇게 호방한 질문을 올리시는 것으로 보아 풍류를 아시는 대인배이심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쩨쩨하게 내공 몇 십 걸지 아니하시고 100의 내공을 거시는 대범한 성품으로 미뤄보건대 평소에도 넓은 아량으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 틀림없다.' 이러면서 아주 난리를 치더라고. 그때 나도 언젠가 이런 걸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욕 뒤지게 먹겠네?" Y가 말했다. 처음 얼굴에 떠있던 어이없음은 황당함 반 기가참 반으로 발전해있었다.


"맞아 돈지랄한다고 뒤지게 욕먹겠지. 그래서 티켓판매금은 전액 기부할 거야. 장학재단 같은 거 하나 만들까 해. 뭐 어차피 돈 많으니까."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깐 숨을 골랐다. 이제 빌드업은 끝났다. 하이라이트가 등장할 시간이다.



"하이라이트는 이거야. 밤이 무르익었을 때, 메인스테이지 헤드라이너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때야. 기다리는데 난데없이 웬 꽃가마가 나타나는 거야. 물론 그 안엔 내가 탔어. 가마꾼은 총 4명인데, 가마를 메고 있는 이 사람들이 당대 각계에서 가장 핫한, 정말 가마꾼으로 쓰기에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인 거지. 섭외가 가능한 최고로. 예를 들면 유재석이 어깨 하나, 쿠팡 CEO가 또 어깨 하나 이런 식으로."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섭외해." Y가 말했다.


"돈을 말도 안 되게 많이 주니까 되지 않을까? 뭐 어차피 돈 많으니까. 안 되면 진용진이라도 들게 하지 뭐."



밤의 풀냄새가 나는 잔디밭 위에서 웃통 벗은 남자들과 야광팔찌 찬 여자들이 플라스틱 맥주잔을 밟고 최후의 헤드라이너를 기다리고 있다. 페스티벌의 흥분도, 달뜬 취기도 밤바람에 조금 차분해졌다. 헤드라이너는 누가 좋을까. 뭐 그건 그때 기분 봐서 정하자.


각 분야 최고의 인물들이 어깨로 짊어진 꽃가마에 실려 나는 무대로 올라간다. 무대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꽃가마를 내려놓고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퇴장한다. 매우 유명한 그들의 쓰임은 그걸로 끝이다. 가마 옮기기.


가마 안에서 나는 괜히 20초 정도 뜸을 들인다. 난데없이 무대 한가운데 와서는 미동도 없는 꽃가마를 보고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나는 기지개를 한번 켠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가마 밖으로 나간다. 마이크를 켜고, 관중들에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김상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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