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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Mar 05. 2022

작업반장, 동네꼬마 그리고 뮤지션

기억에 남은 공연은 세 번. 윤석철을 처음 본 곳은 재즈클럽 에반스였다. 이름 앞에 천재라는 말이 붙고 주말 저녁 공중파에도 나오는 사람의 첫인상이 아주 의외였다.


“드럼 한 명~ 드럼 없어요?”

“호른 합주 가능하신 베이스? 거기 갈색 옷 입으신 분 베이스 맞죠? 호른 합주 해보실래요?”


피아노는 한 시간쯤 쳤던가. 그날 윤석철의 피아노는 기억도 잘 안 난다. 아마추어 프로 할 것 없이 연주자들이 알아서 악기를 챙겨와 자유롭게 합주를 하는 잼데이였다. 현황판을 들고 서서 피아노 몇명 베이스 몇명 호명하는 윤석철은 인력시장에서 인부들 모집하는 작업반장 그 자체였다. 때마침 무릎이 좀 나온 청바지와 적절하게 헐렁한 체크남방을 입고 구성별로 셋씩 넷씩 짝을 지어주는 윤석철은 놀라울 만큼 능숙했다. 만약 어느 짖굿은 유튜버가 그 장면을 찍어 배경에 레미콘이 돌아가고 저기 두어명은 벽돌을 나르고 한쪽에선 시멘트를 공구리치는 모습을 합성했다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을 것이다.


두 번째는 홍대와 상수동 사이 작은 클럽이었다. 앞 시간에 DJ 소울스케이프(그렇다, 멀쩡히 살아있다)가 음악을 틀고 윤석철 트리오가 이어받아 연주하는 날이었다. 그 공연 이후 세 번째로 윤석철을 보기 전까지, 나는 줄곧 그가 나이가 많이 어린 사람인줄 알았다. 그날 인상이 동네꼬마 같았기 때문이다. 오렌지주스 같은 걸 홀짝이며 한쪽 팔을 괴고 테이블에 엎드려있다가 또 심심해서 번쩍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형 따라서 클럽에 놀러온 소울스케이프 조카 같이 보였다. 뭔가 홍대동네꼬마 같은 인상이었다.


그날도 피아노는 솔직히 와닿지 않았다. 잘한다는 느낌은 분명했다. 근데 뭐랄까... ‘의외’가 강한 느낌의 연주였다. 곡이 진행되는 방식이나 시작하고 끝나는 지점들이 매번 예상 외였다. 그게 흥미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음식으로 치면 바질라면을 처음 먹었을 때 같은 느낌이었다. 멜로디는 쉽고 익숙한 맛인데 특유의 향이 강한. 분명 재밌고 흥미롭긴 했다. 근데 빠져들만큼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엊그제 세 번째로 윤석철을 봤다. 서강대 메리홀에서의 단독공연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작업반장이나 동네꼬마가 아니라 뮤지션 윤석철이었다. 바질라면의 맛을 알게 됐다.


이번 EP ‘익숙하고 일정한’의 곡들과 기존의 곡들을 연주했다. 두 곡 연주하고 그 곡들에 관해 이야기하고서 다시 두 곡을 연주하는 친근한 방식이었다. 곡이 좋았고 연주가 훌륭했다. 특히 드럼 연주가 정말 좋았다.


이날 발견한 가장 큰 매력은 윤석철이었다. 연주를 마치고서 왜 이런 곡을 만들었는지 뭘 해보고 싶었던 건지부터, 왜 이런 악기를 썼고 그 악기는 어디서 사왔고 어디서 고쳤고 제목은 어떻게 지었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관객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하는 윤석철을 보면서 이 사람이 왜 작업반장이었고 동네꼬마 같았는지 알게 됐다.


윤석철은 소탈한 사람이다. 자기 할일 열심히 하고, 잘하고, 자기가 잘하는 거 알아도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무대 위에 서서도 누구를 의식해 보여주려는 마음보다 자기 것을 펼쳐내려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 같다. 솔직하고 허세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관객이 힘껏 박수 쳐주면 박수 소리가 정말 좋다 말하고, 앵콜 때 들어갔다 나오는 거 안 좋아한다고 미리 말하는, 그런 친근하고 담백한 사람이라 매력이 있다.


사람을 알게 되니 그 사람이 만든 곡에 대해서도 좀더 알게 됐다. 처음부터 느껴온 그 ‘의외’는 윤석철이라는 사람의 성격이나 지향이기도 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음악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윤석철은 자기 리듬으로 멜로디를 만들고,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 멜로디가 만든 규칙을 스스로 깨는 사람이다. 그 ‘의외’가 윤석철 트리오 음악의 매력일 것이다. ‘여대 앞에 사는 남자’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해’. 제목을 하나 지어도 어김없이 그 의외가 담겨있다. 그래 맞다, 나만의 것이 아니면 음악을 왜 하겠는가.


허례허식이 없는 사람이라 작업반장을 시켜도 유능하게 하고, 누구 의식하기보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하면서 사는 모습에 때론 애처럼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 윤석철이 아닌가 한다. 낭비가 없고, 그래서 잘한다. 자신의 템포로 자기  하는 사람.


겸손하고 당당한 사람을 만나면 늘 기분이 좋다. 윤석철의 팬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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