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후원을 신청했다. 디딤씨앗통장이라는 정부 프로그램으로, 시설보호아동이나 기초생활수급가정아동에게 목돈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아동이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저축하면 정부가 일정금액을 보태주는 형태다. 조금씩 매달 모인 돈은 아동이 자라서 사회에 나갈 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후원금이 아동에게 100% 전달되며, 국가사업이라 빼돌릴 여지가 적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또 가만 두면 좆같이 쓰일 세금을 유용하게 쓰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다. 먹고살만해지면 조금씩이나마 후원을 하자는 생각에 꽤 오래 찾아봤지만 그간 신뢰 가는 곳이 결국 없었다. 이 사회엔 선의로 모인 돈으로 자기 배를 불리는 곳이 너무 많다.
먹고살만해지기가 이제 막 시작한 단계로, 아직 나도 돈을 못 모아서 우선 작은 돈만 하기로 했다. 월 얼마면 년간 얼마인지 계산해보고 전혀 부담 없는 금액을 신청했다. 하다가 끊길 일 없도록, 영원히 할 수 있는 금액으로.
트라우마 때문이다. 학생 시절 몇 년 해오던 굿네이버스 해외아동지원을 월 3만원이 도저히 없어서 해지하게 되었다. 기자가 되고 싶다며 편지와 사진을 보내오던 타지키스탄 애가 자주 꿈에 나타났다. 내가 후원을 하다 말아서 막막해진 건 아닐까. 나 때문에 계획이 다 틀어진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돈은 없어서 3년 정도 편지 번역봉사도 해봤지만 죄책감은 어느 밤마다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혹시 개같이 망해도 평생 할 수 있는 금액을 선택했다. 또 아동을 매칭하거나 정보를 받아보지 않는 비지정 후원으로, 그때그때 가장 필요한 애한테 후원금이 가게 해달라고 했다.
아동보호소에선 나이가 차면 반드시 퇴소해야 하고, 퇴소하면 그 즉시 막막해진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브로커>나 <집이 없어> 같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도 생각이 났다. 그렇게 세상에 툭 던져졌을 때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그래도 의지되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클 것이다. 돈보다도 심리적인 측면에서 중요할 것이다.
신청을 하고서 나는 지금껏 살아오며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랬는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방치된 채로 생존했다. 엄마는 미련하게도 사회에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엄마의 자식인 나는 그걸 답습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용서를 풍족하게 받았다. 가난하고 무식한 애가 못된짓을 하고 선량한 사람들 피해주고 다닌 시절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애를 용서해주었다. 좀도둑질을 했을 때도, 양아치짓을 했을 때도, 버르장머리 없이 굴 때도 그들은 나를 측은히 여기고 끝내 용서해주었다. 나는 그게 감사한 줄도 모를 정도로 어리석고 염치도 없어서 금세 잊어버리곤 다시 사고를 치러 나갔다.
나를 용서한 사람들이 가끔 생각난다. 이름 모를 그 사람들의 눈이 문득 생각나면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그토록 풍족한 용서를, 그 눈들을 떠올리면 이제서야 너무 죄송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나는 사회에 전혀 빚진 게 없다. 아니 사회가 나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었다. 내가 빚진 건 사람들이다. 나를 용서해준 그 사람들. 누군가를 조금이나마 돕고 살고자 하는 건 그걸 갚는 속죄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보다도
나도 누군가를 용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누가 나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쳐도 끝에 가선 용서할 수 있는 구석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조건 없이 용서할 것이다. 그렇게 오래 갚아나가야 나를 지켜보는 눈들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