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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Feb 17. 2024

알껌바 알면 접어

당신은 알껌바를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YES”라 답한다면 님은 사실 행운을 누리며 자라온 분이심ㅇㅇ.


나는 알고 있다. 어린 당신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어보았다. 그 안에 가득 찬 재미까지. 알껌바를 모르는 세대들은 평생 접해볼 수 없는 종류의 설렘도 온전히.



알껌바는 그 이름처럼 아이스크림이지만 안에 껌이 들어있다. 일반 나무막대가 아닌 뚜껑 달린 플라스틱 막대를 제작해 그 안에 알알이 껌을 채워넣는 제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렇게 생겼다.



다시 봐도 개쩐다. 알 낳는 아이스바, 카피도 쩐다. “알 모양 껌이 들어있는” 따위가 아니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알 낳는”이다. 뒤통수를 빡 때린 후 전두엽에 바로 쑤셔넣는다. 어디서 이런 크리에이티브가 나왔을까.


알껌바가 나온 90년대 초는 IMF의 시기였다. 자본시장이 열리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동네 슈퍼 꼬맹이들 중심이던 기존의 아이스크림 유통구조가 무너지고 있었다. 다시 얼라들 호기심을 확 끌어당길, 무언가 새로운 게 필요했던 것이다.


주머니 가벼운 얼라들은 단돈 300원에 아이스크림 먹고 껌까지 씹을 수 있는 알껌바의 미친 개혜자 구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킹오파를 하든 던전드래곤을 하든 300원은 꼭 남겨서 마트에 갖다바쳐야 하루가 완성되었다. 알껌바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 시절 어린이들의 국밥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 했던가. 90년대엔 그야말로 아이스크림의 르네상스가 열렸고 냉동고를 열면 온갖 독창적 재미들이 쏟아져나왔다.


알껌바가 히트하자 한발 더 나가서 이번엔 ‘별난바’가 등장했다. 아이스크림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고, 초콜릿 안에 다시 막대사탕이 들어있다. 히든카드가 또 있다. 막대사탕을 다 먹으면 그게 피리가 된다. 만약 얼라들한테 점입가경이란 사자성어를 공부시킬 때 별난바를 예시로 들었으면 그 즉시 이해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먹고 초콜릿 먹고 사탕 먹고 휠릴리 피리까지 불고. 별난바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 시절 어린이들의 오마카세였다.


이후로도 창의적인 제품들이 연이어 나왔다. 바나 콘, 혹은 튜브 형태이던 아이스크림의 정형성을 깨고 나온 ‘고드름’은 어떠한가. 과일맛 나는 얼음일 뿐이나 넘나 맛있었다. 축구 실컷하고 땀 흘린 뒤에 친구는 콜라 사고 나는 고드름을 사서 고드름에 콜라 부어먹으면 극락이었다. 마지막에 남는 새콤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아이스크림 속에 통젤리가 들어있던 ‘밍키’, 상-젤리 중-아이스크림 하-시리얼의 대열로 순서대로 먹어도 맛있고 섞어먹어도 맛있고 아무튼 맛없을 틈새가 없던 ‘파르페’. 부드럽고 맛있으나 콘돔 모양의 용기에 담겨있어 괜히 기분이 좀 이상하던 ‘거북알’까지.


오늘은 뭘 먹을까, 까치발 들고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고개 파묻은 채 부스럭부스럭. 그야말로 보물창고와 같았다.



이제 그런 재미는 당신의 어린 시절처럼 사라져버렸다. 애석한 일이다. 사람도 없이 쨍한 형광등 아래서 24시간 돌아가는 무인매장에 가 그 많은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다 열어본대도 당신이 찾는 아이스크림은 거기 없다.


90년대가 아이스크림의 르네상스였다는 말을 취소한다. 지금에 비하면 그때 그 시절의 아이스크림 시장은 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옛날 아이스크림들이 훨씬 많이 팔린다.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아이스크림은 ‘투게더’고 두 번째가 ‘붕어싸만코’다. 어쩌면 우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냉동고를 뒤적여 추억을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게 어느 구석에 아직 꽁꽁 얼은 채 남아있을지 몰라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이스크림들 사이를 뒤적거려보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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