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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Nov 04. 2021

영화 '아저씨', 서로의 구원자가 되는 것

영화 '아저씨(2010)'를 본 후기

십여년전 개봉한 청불영화 감상하기 (3탄)


너무 유명해서 그런지 직접 보지 않아도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 '아저씨(2010)'는 나에게 그런 영화였다. 납치 당한 아이를 이웃집 아저씨가 구해주는 영화. 그리고 원빈이 거울을 보며 직접 머리를 깎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나에게 '아저씨(2010)'는 성인이 된 후에 찾아볼 정도로 궁금하지 않은, 이미 머릿속에 내용이 다 그려지는 그저그런 작품이었다. 그렇게 아무 기대 없이 영화를 감상했다.


돌이켜보니 사실 지금까지 원빈이 나온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히트를 쳤던 원빈의 출연작 '꼭지', '가을동화', '태극기 휘날리며', '마더' 등은 매우 유명했지만, 그 내용에 이입하기엔, 또 한 배우의 열성적인 팬이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나에게 있어 '원빈'이란 그냥 '어른들이 좋아했던 잘생기고 인기 많은 배우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 '아저씨'에서 차태식(원빈 扮)의 첫 등장 씬을 보고 '헉'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배우를 보고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원빈이 등장할 땐 정말 이 세상 외모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작품의 내용이나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조금 부끄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첫 느낌이 그랬다.) 그런 얼굴을 반쯤 가린 모자를 쓰고, 초췌하게 동네를 돌아다니는 차태식이 과연 어떤 사연을 가진 걸까 궁금해졌다.


Daum 영화 '아저씨(2010)'


영화 속 차태식은 극도로 말이 없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우수에 찬 눈빛과 가끔 내뱉는 주옥 같은 명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가 가진 사연에 대해 끊임 없이 상상하게 만들었다. 누구와도 관계를 쌓지 않고 단절된 삶을 살아왔던 그는 감정도, 목적도 가지길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호 받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 소미(김새론 扮)와 유대를 쌓으며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있었다. 사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이 아닌지,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어 아이에게 접근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구원자'와도 같았다.


Daum 영화 '아저씨(2010)'


영화 '아저씨'를 보면서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흔히 좋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후 'Boys, Be ambitious'와 같은 교훈을 외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 얼마나 공허한 교훈인가. 사실 차태식의 모습은 명백히 성공한 어른의 모습은 아니다. 꾸질꾸질한 옷차림을 하고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늘 어두운 사회부적응자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러나 영화 속 그는 세상에서 버려진, 우리 사회의 가장 외딴 곳에 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고, 몸을 바쳐 지켜냈다. 어쩌면 진정한 어른이란 화려한 무대에서 후세대에게 공허한 연설을 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힘과 능력을 쏟아 부어 후세대를 지켜내는 사람은 아닐까.


영화 속 악역들의 연기가 엄청났다는 것 또한 무척 기억에 남는다. 특히 만석이(김희원 扮)와 종석이(김성오 扮)가 아동 착취를 통해 마약을 생산, 유통하는 빌런 연기를 너무 잘해서 (특히 표정이 정말 소름끼쳤다) '미친 쓰레기 새끼'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던지...ㅎㅎ 악역들과 원빈의 액션 합도 참 좋았다. 평소 느와르나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영화 '아저씨'를 통해 배우들 간의 액션 연기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빈의 필모그래피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10년 간 공백이라는 점이 무척 아쉽다. 또 이런 액션 영화 찍어 줬으면.


사실  영화 '아저씨'는 기승전결 딱 들어맞는 정석 같은 영화였다. 차태식과 소미의 유대(기)-소미의 납치(승)-차태식의 목숨을 건 구출(전)-차태식의 체포와 마지막 감동 포옹(결)으로 전개되며, 큰 반전 없이 마무리되었다. 너무 딱 들어맞는 구조라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래서 더욱 액션 연기에 공을 들여 연출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꽤 크게 흥행을 했기 때문에 여러 대사, 장면들이 수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본 적이 없었지만, 영화 속 명대사들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그게 얼마나 X같은 건지 내가 보여줄게", "아직 한 발 남았다", "한번만 안아보자" 등. 물론 극 전개에 있어 중요한 대사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말 없는 차태식이 주옥 같은 명대사를 내뱉을 때마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노린 포인트란 생각이 들어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아저씨'는 개봉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얼마 전 개봉한 신작이라 생각하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세련된 감성을 지닌 영화였다. 내용면에서도 액션과 휴머니즘이 결합된 독특한 한국형 느와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에 '아저씨'를 보았던 사람들도,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다시 한번 영화를 정주행하며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영화 속 포인트를 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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