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vs. 안정', 끔찍한 양자택일의 저주를 푸는 반반 솔루션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남에게 잘 동화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성심껏 경청하다 보면 어느덧 그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는데, 특히 호감이 있는 상대라면 그런 일이 훨씬 더 잦다. 오늘 쓸 이야기도 그런 류의 이야기가 될 듯하다. ("나는 팔랑귀다."라는 문장을 한번 길게 써 봤다.)
처장님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찾아온 나에게 "하하, 너는 번아웃이 온 것뿐이야! 내 그럴 줄 알았단다!" 하는 간단한 진단을 내려주었다. 그 말 한마디에 "오오, 그런가!" 하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퇴사 충동은 단순한 '번아웃'에 불과했나? 그럼 꼭 퇴사할 필요까지는 없나?" 하는 희망 어린 물음이 내면에 싹트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노릇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지난 몇 달간의 장대한 인생 고민과 지대한 결심은 다 뭐였다는 말인가? 다른 한편에서는 "아니, 이건 약간의 휴식이면 해결되는 단순 번아웃이 아니야. 넌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거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몇 달간 퇴사를 종용했던 그 목소리다.
아, 또 시작이군. 겨우 잠재웠건만 처장님의 말 한마디에 나의 내면은 또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복잡해진 내 마음은 일단 내버려 두고, 처장님과의 대화에 집중하기로 한다.
나는 가슴속의 가장 무거운 돌덩이로 자리 잡은 한 마디를 밖으로 꺼냈다.
"처장님,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게 있다면 바로 '정년퇴직'입니다.
그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감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아요.
'고작 여기서 정년퇴직을 하려고 한평생을 살아왔는가?
그런 인생을, 도대체 무엇하러 살았지?' 하는 아득한 절망감이 듭니다."
처장님은 깊이 공감한다는 듯이 눈을 지긋이 내리깔며 부드럽게 웃었다.
"최선생님은 자유로운 영혼이죠. 보면 알겠지만 저 역시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비슷한 사람끼리는 알아보는 법이죠.
우리 같은 사람은 나의 미래가 꽉 짜인 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혀 옵니다. 평생 정해진 일을 하다가 정해진 시기에 정년을 맞이하는 미래.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저도 꼭 같은 고민을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웃어른에게 받아 본 처음 받아 본 진심 어린 공감에, 나는 감정이 울컥 북받쳤다. 이미 교수연구실은 나의 눈물바다가 된 지 오래였다. 처장님은 내게 티슈를 건네며 질문을 던졌다.
"최선생님, 입사한 지 몇 년 됐죠?"
이제 만 5년이 넘었다고 말하자 그는 반가워하며 말을 이어갔다.
"저도 딱 5년이 고비였어요. 자유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교수가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교수란 직업은 너무 바쁘더군요. 교육과 연구만으로도 벅찬데 행정 업무도 어찌나 많은지! 앞으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던 게 꼭 그즈음이었어요."
그는 그 시절의 번뇌가 그립기라도 한 듯 슬쩍 웃었다.
"그제서야 내가 교수가 됐을 때 지도교수님이 해 주셨던 조언이 떠오르더군요."
처장님의 지도교수님은 제자의 교수 임용을 축하하며 「조교수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제목의 긴 편지를 주셨다고 한다. 설렌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더니 그 본문은 어이없게도 아래와 같이 요약되었다.
1.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지 말 것
2. 연구를 열심히 하지 말 것
"임용 당시만 해도 '뭐 이런 걸 조언이랍시고 하고 있어?' 하고 코웃음 쳤어요. 교수가 수업과 연구를 열심히 안 하면 뭘 어쩐단 말입니까? 저는 그 조언을 무시하고 모든 일을 모두 열심히 했습니다. 수업, 연구, 행정 모두 혼신을 다해 말이지요."
그러나 혼신을 다한 열심에 대한 보답은 극심한 공황과 번아웃이었다. 그제서야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처장님은 허허 웃었다.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절대 평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걸 저는 알았어요. 그랬다간 꼭 죽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내게는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었습니다. 차마 용기 있게 때려치울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때 그만두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마 그만둘 수는 없으니, 그냥 일을 조금씩 내려놓기로 했어요. 연구도 수업 준비도 한층 가볍게 임하기 시작했죠. 업무 시간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실히 일하되, 그 외에는 모든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삶에 온전히 쏟았어요."
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바다 수영을 시작한 것 역시 꼭 그때였다고 한다. 죽어가던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광활한 바다에 풀어놓자 그는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느꼈다. 바다 수영은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어릴 적 집어던졌던 글쓰기라는 행복을 다시 주워 들게 해 준 것도 바다 수영이었다.
"저는 한때 전업 작가가 꿈이었지만 일찌감치 접은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바다 수영을 하면서 삶의 주도권과 열정을 되찾자, 문득 교수를 하면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때 글쓰기도 다시 시작했지요."
나 역시 막연히 작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처장님 역시 글을 쓴다는 이야기에는 더욱 귀를 쫑긋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 앞에서 그는 행복하고 충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을요. 저는 제가 전업 작가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가 본업이었다면 분명 '돈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남이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테지요. 하지만 제게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기 때문에 어떤 글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답니다."
나는 처장님과의 대화에 빠져들고 있었다. 빚을 내서 직장에 몸뚱이를 매달아 놓으라던 팀장님과의 면담 때와는 달리, 여기서는 가슴이 설레어 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안정(=직장)'과 '자유(=퇴사)'를 서로 반대되는 의미로만 생각했던 나로서는, 처장님이 제시한 '안정적인 직장이 부여하는 자유'라는 유연한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마음에 들었다.
"저의 지도교수님은 평생 연구에만 헌신하다 정년퇴직을 맞이하셨어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제 미래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 생각하니 절망스러웠죠.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정년퇴직을 한다고 해도 각 개인의 삶은 다 다른 거예요.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채롭게 채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지도교수님과는 영판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저는 바다 수영과 글쓰기를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답니다. 그것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직장이 있음에 감사해요. 언젠가 정년을 맞이하더라도 저의 삶은 결코 무미건조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 어린 감사를 보내는 듯했다.
"선생님도 좀 더 사랑하는 일에 집중해 보세요. 업무는 그냥 '생계'를 위한 것으로 여기면서 조금만 내려놓고요.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면 직장 일도 한편 수월하게 해낼 힘이 생긴답니다."
그렇다. 반드시 급진적으로 환경을 바꿀 필요는 없다. 인생은 언제나 태도와 관점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일이라는 것을, 직장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것의 중요도를 다소간 내려놓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일을 내 본업처럼 우선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되리라.
굳은 결의로 '퇴사!'를 외치며 연구실을 박차고 들어왔던 나는, 어느새 처장님의 에너지에 동화되어 보들보들한 햄스터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의 자랑스런 두 팔랑귀가 여느 때보다도 더욱 세차게 펄럭펄럭하며 활약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처장님, 저는 출근 시간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아침마다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에요."
어느덧 나는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매일같이 지각을 한다는 창피한 얘기는 쏙 빼고) 출근하는 순간이 너무 괴롭다는 문제를 상담하자, 처장님은 그 고충에는 이미 자신도 정통하다며 하하하 웃었다.
"최선생님, 제가 매일 새벽 수영을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건 죽기보다 싫지만, 수영장은 누가 뜯어말린대도 한달음에 가기 때문이죠. 저는 수영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갑니다. 그리고 수영하러 밖에 나온 김에 출근을 하지요."
그의 삶의 비법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김에 싫은 일도 해치운다는 것이었다. 출근 전에 수영장을 가는 것이 아니라, 수영장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 김에 출근을 하는 것. 똑같은 행동이더라도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행동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내면에서 순진한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처장님의 삶의 방식을 당장 따라 해 보고 싶었다.
나는 글쓰기를 할 때면 언제든 손쉽게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일은 글쓰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글쓰기로 아침을 열어보리라.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카페에서 글을 쓰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러 밖에 나온 김에, 출근도 해 보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처장님. 저도 한번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한층 생기가 생긴 내 눈빛을 반기면서, 처장님은 특유의 유쾌한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가 부서장으로 있는 한, 최선생님은 절대 못 그만둘 겁니다."
그가 강지훈 팀장에게서 받은 주문, 이른바 <도망치는 멋진고먐미를 붙잡아라!> 미션을 훌륭하게 성공해 낸 순간이었다.
아무렴 어떠랴. 일개 직원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진심 어린 상담을 해 주신 처장님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정말로 감사한 마음뿐이다.
처장님의 처방은 효과적인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적어도 그 순간은 그렇게 보였다.
지난 몇 달간 나는 양자택일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퇴사(자유와 불안)와 비퇴사(구속과 안정)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연한 표정으로 '퇴사'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처장님의 행복한 제안은 바로 "안정과 자유를 반반 섞는 것"이었다. 즉, 안정 속에다 자유를 집어넣어 한 방에 호로록 마시는 것이다. 양쪽의 장점만 취할 수 있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교착되었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는 이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생애를 건 장대한 퇴사 결정이 아니라, "일에 과몰입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과 "내 삶의 무게추를 직장 일보다는 글쓰기에 두는 연습", "출근 전 글쓰기라는 간단한 루틴 확립" 따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언제나 큰 문제와 간단한 해답을 던지는 법이니까.
그래그래. 적어도 당분간은 퇴사는 생각하지 말자. 그런 무서운 생각은 당분간 하지 말자. 직장 일은 적당히 힘을 빼고 돈벌이로만 대하려 애써 보자. 가슴 뛰는 일에다 나의 본진을 두고, 안정적인 돈벌이가 그것을 지원함에 감사하며 사는 삶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을 얻은 나의 발걸음은 사뭇 경쾌했다. 나는 답을 얻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호 통재라.
처장님이 써 주신 위대한 처방전의 지속 기간은 고작 3일에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