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떠난 '노답' 직원을, 부장은 어떻게 대했어야 했을까?
팀장님 및 처장님과 퇴사 면담을 한 후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당분간은 회사를 다녀 보기로 스스로와 타협했지만 도저히 마음은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는 다소 미안한 일이지만, 일생일대의 중대사로 갈팡질팡하는 판국에 업무를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최소한의 통상 업무만 기계적으로 처리하고는 이내 퍼져 버리기를 반복했다.
어차피 굵직한 행사나 교육은 이미 다 마무리되었고 예산 처리도 일찌감치 해 두었으니, 이제는 결과보고서 작성만 남은 판국이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이 결과보고서 작성에는 정해진 기한이 없었다. 물론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깔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았다.
일을 밍기적대고 미루면서 가슴 한켠에는 죄책감이 쌓여 갔지만, 나는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퇴사 얘기까지 꺼냈는데, 조금은 늦어도 봐 주겠지."
어림도 없지! 철없는 최멋고 학생, 여기는 혹독한 회사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더군다나 부하직원을 야단치며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그 어떤 티끌도 멋지게 찾아내는 우리의 허영미 부장님께서, 마음껏 호통을 칠 이런 절호의 기회를 고이 넘겨줄 리가 없었다.
우리 회사에는 <OO자료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아늑하고 은밀한 구석탱이에 숨겨져 있어서 쉬이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비롯한 몇몇 직원은 이곳을 <콜로세움>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모든 분쟁과 싸움이 연이어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을 피해 분통을 터뜨리며 싸울 일이 있으면 직원들은 모두 이곳을 찾곤 했다. 일전에 K선생님이 J선생님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싸웠을 때도, R선생님과 J선생님이 우우 날뛰며 다투었을 때도, 우리의 '콜로세움'은 언제나 한결같이 든든한 싸움터가 되어 주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22년의 늦가을 무렵, 나는 옆 부서[A부서]의 부장이었던 허영미 부장님과 함께 <콜로세움>을 찾고 말았다.
내 직속 상관도 아닌 그가 선 넘는 참견으로 일처리를 지지부진하게 만든 탓에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가차없이 분노의 칼끝을 겨누었다.
"부장님은 A부 부장이시면서 왜 저희 B부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시는데요? 저희 부장님도 이미 OK하신 사안에 대해서 부장님이 참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온갖 독설을 '맞는 말'의 탈을 씌워 쏘아대던 나는 흡사 한 마리의 미친 개나 다름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날 정도로 창피한 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분노를 날것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내 역량의 최선이었다.
"게다가 행사는 B부서의 일인데, 왜 자꾸 A부 소속인 지혜쌤을 행사 담당자로 끼워넣으려고 하세요? 지혜쌤은 완전히 다른 업무 담당이잖아요. 행사 업무 담당자는 접니다. 업무체계 존중 좀 해 주세요."
당시의 나 역시, 사실은 우아하고 여유로운 너스레를 떨면서 부드럽고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에 온몸을 빼앗긴 상태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허부장으로 인해 후배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량한 정의감과 정당성마저 더해주었으니, 나는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멋고쌤은 너무 방어적이야.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쳐내고 반박하니까 무슨 의견을 낼 수가 없어."
"하! 왜 그런지 생각은 해 보셨나요? (무슨 수용할 만한 의견을 내야 수용을 하지!)"
경멸조로 쏘아붙이는 나에게 허부장은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된 항변을 하지 못했고, 그 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상사의 말 한 마디에 죽는 시늉도 하는 이 직장에서, 그가 부하에게 그런 심한 푸대접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허영미 부장은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인 그에게 있어서, 면전에서 뼈아픈 모욕을 당했던 그 사건은 크나큰 고통의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허부장은 나와의 모든 접촉을 티가 나게 피했다. 그 대신, 그는 싫은 소리 못하는 양지혜 선생님을 비롯한 내 후배들을 극렬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들을 분 단위로 불러세워서 각종 비상식적인 트집을 잡으며 피를 말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비겁한 행태는 나로 하여금 허부장을 더욱 우습고 하찮게 여기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심술궂게 군 것은 바로 나인데, 어째서 내가 아닌 더 약한 이들을 괴롭힌다는 말인가? 아하, 내가 두려워서 그렇구나!
그렇잖아도 못된 상사에게 할 말을 했다는 쾌감과 알량한 정의감에 사로잡힌 아기(당시 만 30세) 최멋고는, 그의 밑창 빠진 인격을 지켜보면서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나의 판단은 한없이 올바르고 정당하기만 한 것 같았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허부장을 맹렬히 미워하고 비난한다는 것이 바로 그 근거였다.
그로부터 1년여가 흘러서 2023년 연말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오만방자함은 그 이후로도 악화일로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사람을 증오하는 것이나,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배를 내밀고 사는 것은 썩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동등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모두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그를 계속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상태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를 사랑해 보고 싶었다.
내면의 의지에 따라 나는 허영미라는 한 인간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무능한 상사로서 부하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박탈감, 그것을 보상해 주는 것이 부장의 직위가 부여하는 권력뿐인 그의 슬픔을 가슴으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어서, 이윽고 나는 그를 그럭저럭 품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를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거나, 내가 전적으로 겸손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어느 정도 오만했고, 여전히 가슴 한켠에는 그를 경멸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다.
부서 이동으로 내가 그의 직속 부하가 된 이후에도 그의 모든 행동은 '못난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그 개떡 같은 의사결정들을 성녀처럼 품어안는다는 것은 밴댕이 속을 지닌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정리하자면, 콜로세움 대전으로부터 1년여가 지난, 퇴사를 격렬히 고민하던 그 시점, 나는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업신여기고 미워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업신여기는 쪽의 감정이 좀 더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미움이 그럭저럭 사그러들어서 그 자리를 연민과 공감이 자리 잡아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 한해서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와 웃으면서 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허부장 쪽은 전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그에게는 여전히 내가 밉디미운 눈엣가시였다. 그는 이 시건방진 부하에게 복수할 때를, "내가 너의 상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타이밍만을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었다.
썩은 동태눈깔로 차일피일 미루던 행사 결과보고서를 마침내 완성해서 상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행사일로부터 2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상사 입장에서 이 버르장머리 없는 부하 놈을 얼마나 조지고 싶었겠는가?
허부장은 때늦은 결재 문서가 올라온 것을 보고 가슴이 끓어올랐을 것이다. 첫째로는 "어떻게 결과보고를 이렇게 늦게 해?!" 하는 상사의 정당한 분노로서 그랬을 것이고, 둘째로는 "이 기회를 잡아서 이놈을 실컷 두들겨 패야겠다!" 하는 인간적인 쾌감으로서 그랬을 것이다. 두 번째의 비중이 훨씬 컸을 거라고 나는 감히 장담한다.
세찬 아드레날린으로 펌핑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우리의 허영미 부장님은 전화통을 들어올린다.
"최멋고 선생님? 지금 당장 내 자리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