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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scale Sep 27. 2020

날씨가 좋다

     요즘 날씨가 좋다. 선물 같은 날씨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치우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기분이 좋다. 몇 달 전 장마가 계속 이어질 때는 누구에겐지 모를 짜증도 냈다. 애꿎은 날씨 어플에 성질을 냈던 거 같다. 어떻게 2주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를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할 수 있는가 싶었다. 오늘 비, 내일 비, 모레 비, 이번 주 주말 비, 다음 주도... 비, 비, 비.


     어쨌든 지겨운 장마가 끝나고 이제는 쨍한 날씨의 연속이다. 날씨가 좋으니 평소 걷던 길도 더 좋은 길처럼 느껴진다. 어느 음식점 테라스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순간도, 이전과 같은 음식을 먹는데도 평소보다 더 좋은 것 같다. 가던 길을 괜스레 돌아가게 되고, 평소 걷던 걸음보다 더 늦게 걷는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댕댕이에 더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문다. 많이 들어 조금은 심드렁해진 노래도 이제는 발끝까지 기분 좋게 전해진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계절인 가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괜히 네이버에 "가을"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한편, 전국적으로 비가 자주 내려 이른바 가을장마철이 된다. 특히, 부산·울산 등 남동부 지방에서는 강수량을 월별로 볼 때 9월이 일 년 중 가장 많다. 10월로 접어들면 강수량이 줄고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져 맑고 상쾌한 날씨가 계속된다. 이른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맑은 가을 하늘의 특징은 구름의 모양이다. 여름 동안에는 수직방향으로 대류(對流)가 발달하여 적운(積雲)과 적란운(積亂雲)이 많이 나타났으나, 가을이 되면 수평방향으로 흐르는 권운(卷雲)과 고적운(高積雲) 등이 자주 눈에 띈다. 가을 하늘이 맑은 것은 대기의 대류가 여름보다 약해서 먼지가 고공(高空)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쉽게 비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읽다 보니 뭔가 가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객관적으로 증명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져 맑고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고, 가을 하늘이 맑은 것은 대기의 대류가 여름보다 약해서 먼지가 높이 올라가지 못하고, 쉽게 비에 씻겨 내리기 때문이다." 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요새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장마 뒤 가을이 오고, 가을 뒤 겨울이, 그리고 다시 장마가 찾아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애를 써서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보기보다는 의연히 있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힘을 넘어 날씨를 바꿔보겠다는 주제넘는 생각.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 여름을 없애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무조건 극복하겠다는 버거운 다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맑은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맑은 날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연평균 강수일이 평균 100일 정도 된다 한다. 그럼 어림잡아 나에게 일 년의 1/4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날이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 년의 1/4은 기분이 매우 좋고, 3/4은 그럭저럭 기분이 좋은 날일 테다. 하늘이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비를 내리는 것은 아닐 테니 굳이 나에게 악감정 없는 비구름을 미워하지 말고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하는 것도 괜찮다 싶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면 나는 365일의 매일의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눈 오는 날은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하지만 언젠가 비가 올 테다. 그리고 날씨가 또 개겠지. 그리고 곧 눈이 내릴 테다. 맑은 날도 비 오는 날도 눈 내리는 날도 모두 소중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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