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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스프리 Nov 22. 2020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될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에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해가 지나며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여러 번 나를 스쳐가고 어렴풋이 마음에 남는 것이 있어 적는다.  


     우선은 기쁜 일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취업에 성공했을 때 매우 기뻤다. 발표가 나기 몇 시간 전에 PC방에서 친구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발표 시간이 되어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 기분은 무슨 기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설탕 세 스푼을 듬뿍 넣은 계란찜이 심장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한 느낌이었나. 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을 모니터에서 보고 PC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가 PC방에서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던 날로 기억한다.


     가족들은 내가 면접을 봤다는 사실도 몰랐다. 두 번째 면접은 합숙 면접이었는데 엠티 간다고 집에 대충 말하고 합숙 면접을 다녀왔다. 합숙면접을 통과하고 최종 면접 3차까지 볼 때까지도 우리 집은 몰랐다. 합격을 하니 나의 주변 사람들이 매우 기뻐했고, 마치 서로의 마음이 손을 마주치는 것처럼 기쁨의 박수 소리가 아주 우렁차게 자라는 것을 경험했다. 기쁨은 정녕 나눈다고 줄지 않았다. 


     그리고 슬픈 일을 나누는 것에 대하여

     앞서 말한 취직 성공의 이야기 앞에는 불합격, 탈락의 이야기가 물론 있다. GS에 서류가 붙어 면접을 보러 갔다. 생애 첫 면접이었다. 아르바이트 면접은 꽤 했었으나 양복을 입고 가는 면접은 처음이었다. 입고 있는 양복은 아버지와 함께 왕복 3시간 걸쳐 백화점을 오고 가며 산 옷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 양복이어서인지 더 불편했다. 


     준비를 많이 해 갔다. 자기소개는 내가 생각해도 꽤 잘했다. 면접관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잘못된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대답하나 마나 한 뻔한 대답을 했었다. "이런 상황엔 어떻게 하실 건가요?"라는 면접관에 질문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수준이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자면 그때 면접관이 물어봤던 질문에 진정으로 열심히 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젊었던 면접관은 나에게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아쉽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면접을 마치고 빌딩을 나서며 지하철 화장실로 들어갔다. 첫 면접이 끝나고 이거 정말 망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을 다섯 명이서 들어갔는데 네 명은 면접장을 나서며 본인들끼리 잘 봤다 못 봤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홀로 국적이 다른 대한민국 사람처럼 묘한 거리를 두며 빌딩을 나왔다.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 정장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입을 기회 없는 정장을 집까지 입고 갈 법도 한대 나는 갈아입을 옷을 싸갔었고 면접이 끝나자마자 10분 만에 다시 갈아입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붙을 확률이 거의 없었던 면접이었어도 붙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발표 당일에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집에는 얘기하지 않았다. 첫 면접, 첫 불합격이 당연한 얘기지만 그래도 얘기하지 못했다. 이것도 슬픔이라면 슬픔인데 내가 가족들 앞에 이 이야기를 꺼내 두었을 때 아쉬워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을 알기에,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기에 나를 아는 사람들일수록 더 아쉬울 테고 더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괜찮지 않았다면 상대방이 나 때문에 느끼는 안타까움까지 느껴져 더 아팠을 때고, 나는 괜찮았어도 상대방이 날 위해 하는 걱정에 그제야 못 느끼던 아픔을 느꼈을 수도 있다. 슬픔은 가시와 같았다. 가시를 나누는 것과 같다. 그 크기는 천차만별이겠지만 가시와 꽤 닮았다. 나도 몰랐던 가시에 남이 찔리고, 나에게서 옮긴 가시에 내가 찔리고, 서로가 가진 가시에 서로가 찔리고. 


    "나의 아저씨"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거기에 이런 비슷한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 일도 아니야"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볼 때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내가 아팠어도 우리 가족이 몰랐으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세찬 비바람을 맞고 집에 들어와 젖은 옷을 갈아 입고 머리를 말리고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아침인사를 우렁차게 한다면 그건 없었던 일이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참을 수 있으면 참는 것이고, 응원을 바라면 응원을 바란다고 주변에 얘기할 것이다. 다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는 것은 맞는데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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