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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니스프리 Feb 13. 2021

코드 블루

     여느 때처럼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보던 영상을 다 보면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아니면 관련동영상이라며 추천을 해주는데 거기서 헤어나오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몇 분, 몇 시간을 계속해서 영상을 보고 있는데 이국종 교수님의 영상이 추천으로 나왔다. 유희열님이 나오시는 '대화의 희열' 이라는 토크쇼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이국종 교수님이 매우 바쁘시기에 '대화의 희열'팀이 병원으로 직접 찾아 뵈었다병원 건물 어딘가의 귀퉁이에 자리를 간이로 마련하고 이국종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한밤중이었다. 방송국 조명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국종 교수님이 긴 하얀 가운을 입으신 채로 걸어 오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병원 전체에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멈추게 하는 묘한 소리였다. 다른 소리는 모두 멈추고 오로지 병원 장내에 방송만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또렷이 들리는 "코드 블루-" 라는 단어가 흰 벽지에 뿌려지는 파란색 물감처럼 병원 장내를 물들였다.


     유희열님과 다른 게스트 분들 모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코드블루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니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국종 교수님은 바위같기도 하고, 잘 벼린 칼 같기도 한 표정으로 방송을 듣고 계셨다. 교수님의 무릎 위에 놓인 한 손은 바삐 어딘가로 달려가는 것처럼 위아래로 움직였다. 


     교수님은 이내 양해를 구하시고 방금 전에 헬기로 이송된 환자를 보기 위해 가봐야겠다고 말씀하시며 일어 나셨다. 그 뒤를 카메라가 쫓았다. 남겨진 게스트들이 "코드블루가 뭘까요? 큰 일은 아니겠죠?" 하는 얘기를 서로 나눴다. 얼마 뒤 장내에 "코드블루 상황종료"라는 방송이 나왔다. 교수님은 다시 방송을 찍던 자리로 돌아오셨다. 


     이국종 교수님이 돌아와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코드블루"란 의료진들이 쓰는 용어였다. 환자에게 심장마비가 왔을 때 쓰는 용어라 한다. 병원 원내에 있는 환자 보호자분들이 "심장마비"라는 단어를 방송으로 들으면 놀라기 때문에 코드블루라는 용어로 의료진들끼리 소통을 한다. 코드블루 방송이 나오면 비의료인들인 환자의 보호자들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깨달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정확히 모르는 그 간격 덕에 '큰 일 아니겠지' 하는 마음과 '잘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자리 잡는다. 


     의료진들은 코드블루가 발생하면 비상이다. 죽어가는 삶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하고 필요한 조치들을 한다. 코드블루의 당사자인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들은 모르지만 의료진들은 생사의 경계에로 뛰어 들어가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살리기 위한 사람과 살고자 하는 사람이 우리가 모르는 찰나에 생(生)을 걸고 싸운다. 


     비단 코드블루가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상황은 아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코드블루 상황처럼 절실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출근하며 매일 만나는 사람 중에도, 가까운 친구 중에도, 심지어 나의 가족 중에도 코드블루를 겪고 있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가볍게 지나치는 사람들, 저 큰 빌딩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점 처럼 보이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생(生)을 건 코드블루를 겪고 있을지 모른다.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내가 모르는 것일테다.


     이국종 교수님처럼 타인의 코드블루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그래도 마음에 새길 뿐이다. 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의 무게를 온 몸으로 견디며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구나. 누군가는 태산처럼 무거운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사투를 벌이고 있구나. 누구나 그럴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가까운 지인, 모르는 사람, 지나치는 사람, 무례한 사람,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우스운 사람, 경박한 사람, 까칠한 사람, 진중한 사람. 그 모두의 앞에서 생각을 무겁게, 입을 무겁게, 태도를 엄숙하게 지켜야겠다 생각한다. 내가 당신의 코드블루를 도울 순 없어도 응원은 할 수 있으니, 같은 비상사태를 겪고 있는 전우로서 격려를 건내야겠다.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격려를 건냅니다. 


     당신의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코드블루가 무엇인지 모를테지만 당신이 그 위기를 잘 헤쳐나가고 웃는 얼굴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코드블루 상황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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