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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명숙 Jun 26. 2019

흰머리 홀씨

나이 먹으면서 자연히 줄어든 머리숱이 요 두어 달 동안에 눈에 띠게 훤해져 버렸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면 ‘머리털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공연한 엄살이 아니다. 

20년 전 남편은 칠순 행사를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회고전으로 성대하게 치렀다. 그러고도 또 오래 살아 남들은 한 번하기도 어렵다는 전시회를 두 번이나 치르게 되었다. 5월 17일부터 9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시회라 준비 단계부터 마음이 애잔했다. 국현의 직원들이 아카이브실에 소개할 자료를 찾는다고 수시로 집을 들락거리고, 아버지 책 쓴다고 딸 또한 온갖 정보를 탈탈 털어내서 나까지 덩달아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엔 온통 그 일에 휘말렸다. 1972년도부터 남편이 해마다 기록한 일기장이며, 평생 받은 편지 모아놓은 파일만 해도 수십 권이다. 연대별로 정리한 사진첩도 족히 30권은 넘는 것 같다. 거기다가  신문과 잡지 기사 스크랩북까지 합치면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것들을 한 권씩 꺼내 필요한 자료 추려내는 일을 두 달 가까이 하다 보니, 내 머리가 그만 요 모양 요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2년 전부터 우리 부부는 이 전시회에 맞추어 자서전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그런데 대필하는 분이 자료가 방대하다는 이유로 지지부진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막내가 딸의 시각으로 아버지의 삶에 대해 한번 써 보고 싶다며 덤볐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서 무슨 수로 쓰나 했더니, 에너지 넘치는 딸은 100M 달리기 선수처럼 냅다 내달려 두달 만에 초고를 끝냈다. 그래도 정확한 년대며, 지명, 이름, 일화를 남편의 기억에만 의존할 수 없어, 딸은 인터넷과 서적으로 확인 작업을 하고, 나는 남편의 기억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주었다. 돋보기 쓰고도 모자라 확대경을 들고 콜롬보 형사처럼 서재와 창고를 휩쓸고 돌아다니다 문득 보니, 내 흰 머리가 폴폴 온 집안을 날아다니는 게 아닌가? 아차 싶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데 진짜 복병은 다른 데 도사리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수면 시간이 조금 줄긴 했어도 잠 못 들어 뒤척이는 밤 같은 건 내 사전에 없었다. ‘베개에 머리 붙이면 코곤다’는 표현이 내게는 더 적절했다. 그런데 그렇게 천하태평이던 내 일상에 남편의 회고록이 끼어들면서부터 뇌세포에 빨간 불이 켜져버렸다. 한밤중에 깨어 뒤척이는 날이 많아졌고, 급기야는 거실로 나와 TV를 켜고 멍하니 앉아 있는 날이 점점 늘었다. 처음엔 너무 피곤해서 잠이 안 오나 보다 했는데, 잘 생각해보니 딸이 책을 쓰는 중에 느닷없이 생긴 증세였다. 

하긴 오래전에 남편이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있으면 내용과 관계없이 코끝이 찡해지거나, 나도 모르게 마음이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까맣게 잊고 있던 전쟁이 새삼스레 떠오르기도 하고, 가난 속에 허덕이던 젊은 날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마음이 다급해졌다가 두려워지고, 분노하고, 참담해지길 반복했다. 

사실 나는 노년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아예 그에 대해 개념 조차 없었던 것 같다. 친정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배운 터라, 자식들한테 폐 끼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돈을 저축하고 운동해서 내 몸 건사나 잘 하면 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는 나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딸의 책 때문에 매일 남편의 낡아빠진 일기장을 뒤지며 그의 행적을 뒤쫓다 보니 뜻하지 않게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남편의 일기장은 매번 ‘아침에 일어나 마누라가 차려준 밥을 먹었다’와 ‘간밤에 과음으로 몹시 피곤하다’는 기록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을 왜 기록해 놓았는지 궁금해서 물으니 남편은 사실이라서 기록했다며 되레 나를 이상히 보았다. 그 많은 날들에서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았을 건데 그런 사실은 한마디 언급도 없고, 나는 밥 퍼주는 마누라로, 자긴 술꾼 남편으로 기록을 남긴 것이 몹시 분하고 서운했다. 

이번에 자료 찾는다고 과거를 들쑤시면서 깨달은 게 있다. 우리가 정말이라고 믿는 기억들이 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왜곡된 것이며 우리가 얼마나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알게 됐다.

어느 날 막내 딸이 나에게 물었다. 큰 오빠가 장가가기 전 어느 늦은 밤, 우리 다섯 식구가 심하게 싸운 적이 있는데 엄마도 기억하냐고. 자기가 큰 오빠랑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는데 바람을 맞았고, 큰 오빠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와 쨍알대는 동생에게 화를 냈고, 엄마가 말리고, 아빠까지 올라와 큰소리가 나자, 부모에게 대든다고 둘째 오빠가 나서서 형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바람에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들의 기억은 또 각각 달랐다.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온 아버지가 엄마를 귀찮게 괴롭혀서 부모 일에 큰 아들이 끼어 들었고, 앞 뒤 사정 모르는 작은 아들이 형에게 대들면서 판이 커저버렸다고 한다. 

하나의 사건을 삼남매가 제가끔 기억하고 있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각자 입장에서 해석하고, 제 편한 쪽으로 왜곡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 멋대로 부풀려서 진실과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그런데 왠 일일까? 엄마인 나는 그 일을 기억도 못한다. 못하는 이유가 또 마음에 걸린다. 내 무의식이 그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운 게 아닐까? 최선을 다해 반듯하게 살아왔다는 믿음의 근거가 도대체 어디 있는지, 지난 기억을 끌어내 보니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갑자기 자신감이 무너진다.

휑한 내 정수리가 딸의 눈에도 걱정이 되었나 보다. 엔간히 초고가 마무리 됐으니 엄만 이 일에서 손을 떼도 된다고 해서 ‘야호!’ 라고 환호성을 내 질러놓고는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미 과거가 끈끈하게  매달려 있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쉬울 것 같지 않다.

나이 들면 눈물샘도 마른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옛날 일을 들춰 낼때마다 눈물이 주책없이 흘러내린다. 새벽에 잠이 깨어 뒤척이는 것도 여전하다. 생각해 보면, 늙으면 머리카락 빠지는 것도, 새벽에 우두커니 앉아 TV를 보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딸이 위로하기를 엄마가 평생 걸려 완성한 작품은 아빠라고, 아빠의 회고록은 엄마의 얘기라고, 그러니 힘을 내란다. 그렇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믿고 살아온 것이 진짜 내 삶이었다는 확신이다. 바라건데, 빈 내 모공 속에서 새 머리카락이 힘차게 다시 솟아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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