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이는 사회성 그룹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언어와 놀이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뭔가를 또 추가하기에는 시간과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됐지만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원래는 짝 치료 수업을 하고 싶었다. 아이는 어른과의 대화에서는 그래도 많이 튀지는 않는다. 어른들은 5세 아이가 하는 말이라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아이에게 맞춰 주신다. 그야말로 다섯 살이니까. 하지만 또래는 다르다. 느린 속도로 말을 이어가는 우리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맞춰주지 않는다. 그 아이 역시 다섯 살이니까. 아무도 맞춰주지 않는 환경에서도 지낼 수 있는 연습이 아무래도 필요하다. 거기가 아이가 살아나갈 세상이니까.
아이와 맞는 짝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5세에 짝 치료하는 아동이 많지도 않거니와 성향이 비슷한 게 아이에게 답이 될지, 독이 될지 맞춰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둘의 케미를 잘 캐치해 줄 믿음직한 치료사를 만나야 하고, 한 친구가 결석일 때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고, 중간에 언제든 틀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짝'이다.
일단 대기를 걸어놓고 대안책으로 사회성 그룹치료를 알아보았다. 짝을 찾는 것만 어려운 줄 알았는데, 집 근처엔 5세 그룹치료가 아예 없었다.
6세는 돼야 그룹으로 보드게임도 하고, 의견 교환도 되지 않겠나 싶기도 하다. 내년에 일반 유치원에 보낼 계획이라 급한 마음에 조금 멀더라도 일단 다녀보기로 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 속도 모르고 지하철을 탄다고 마냥 들떠 있다. 한동안은 "출입문이 닫힙니다" 방송을 반복하며 따라 하는 아이 손을 꾹 누르며, 제발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아줘 하며 고개를 숙인 기억도 난다. 아이가 이제 커가고 지능이 평균이라 엄마가 이렇게 몇 번 말하면, 자기도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모양이다. 요즘엔 다행히도 기계음 소리를 안 한다.
그렇게 오늘도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을 탔고, 자리에 앉았는데, 30대로 보이는 성인이 눈에 띈다. 그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나, 한 정거장을 지나가기도 전에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장애를 지녔다는 것을.
한쪽 눈만 실눈으로 형광등을 지긋이 바라보며, 옆의 빈자리를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가며 훑는다. 앉기 편하라고 뒤쪽으로 움푹 파진 것이 마냥 신기한 듯 연신 의자를 쓰다듬는다.
진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틀릴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했던 시각추구 행동은 유아기 때 하는 것들인데, 안타깝게도 그것들이 아직 소거되지 않았다니..
다른 빈자리들이 채워지는 속도에 비해 그 사람의 옆자리는 계속 비워져 있었다.
여기에 타인인 내 마음이 무너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아이의 미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밖이 보이는 구간에 다다르자, 아이는 신이 나서 옆 사람에게 신발이 닿는지도 모르고 몸을 한껏 돌리고는 밖을 내다본다. 어두운 밤만큼이나 마음도 타들어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