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생각하고 간 곳이 어느새 머무른지 3개월이 되었다. 실감나지 않는 세부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꼭 쥐고 덜덜 떨며 출국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내가 한국이라니. 힘들고 지친 날들도 있었지만 색다른 경험임은 분명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 만들어가는 이미지와, 스스로 적응하고 해결하는 모습들은 나조차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했다. 이정도로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논 적은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거나 내일이 없듯 놀러 다니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커리어적으로는 제자리이지만 한량의 인생을 경험해 본 것에 의의를 두고 좋은 편으로 포장해보려고 한다. 놀고먹으면서도 갖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나는 3개월 동안 역행해버렸다. 도파민이 분비될만한 자극적인 일들만 쫓아다니느라 건강한 생활습관과 올바른 가치관을 잃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책을 단 한 번도 들지 않았고, 글을 쓰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조차 가지지 않았다. 이것들은 어느 날 갑자기 얻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내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임을 깨달았다. 좋은 습관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고!
깊은 관계는 안정감을, 새로운 인연은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얻는 것은 항상 나를 설레게 했다. 혼자 여행을 가는 이유 중 새 인연을 만들기 쉽다는 것도 한 몫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피로감이 밀려왔다. 항상 똑같은 말의 반복, 반복, 또 반복이다. 그렇다고 즐겁지 않으냐 하면 물론 즐거웠다. 단지 그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적어 서로를 알아가기 어려울뿐더러, 그러한 사람들이 다음날 또 몰려왔다. 모든 인연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머리는 이해하는데 몸이 그 피로를 견디지 못했다. 세 달째에 접어드니 파티는 다음 기수에 맡겨버리고 멍하니 앉아있는 날들이 많았다. 나처럼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이 또 어딨겠냐고 항상 강점으로 생각했지만 더 이상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다고, 가끔 가는 여행에서 만나기에 더 특별하고 재밌었던 것이다.
왜 나는 자기주장과 중심이 없나. 그 논제에 대해 아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화를 할 때 질문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해 말하는 것이 어렵다. 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열등감과 괜한 걱정들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있었다. 이전에 접한 니체의 철학을 통해 이를 떨쳐내려 노력했다.
르상티망이란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원한이나 증오가 되풀이되며 쌓이는 감정이다. 약자는 강자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르상티망이라는 감정을 사용한다. 니체는 도덕 유형을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으로 분류한다. 노예는 강자를 악한 인간으로, 대조적인 선한 인간 즉 약자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들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이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를 지나쳐 르상티망이 생긴다는 것은 약자가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주인 도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주인'은 자신이 가치를 창조한다고 믿기에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주어진 삶을 긍정한다. 최고의 삶이란 열등감을 발판 삼아 도약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열등감이 있지만 단지 그 모양과 해소 방법이 다를 뿐이다. 특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더욱이 신경 끄고 내 삶에 집중하면 된다.
술기운을 빌려야 한다면 나의 비겁함과 나약함에서 비롯된 필요 없는 행동이다. 나는 평소에 하던 생각을 술에 만취하면 그대로 실천하는 술버릇이 있다.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술김에 잠시 이성의 끈을 놓고 그냥 해버린다. 물론 절대 넘으면 안될 선이라면 애초에 술을 조절하지만, 그 선이 모호하고 한 번쯤 술의 힘을 빌려하고 싶은 것이라면 일부로라도 취하는 것이다. 취해서 그랬다, 원래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다, 기억이 안 난다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있다면 맨 정신으로 정정당당히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후회가 없다.
음주가 즐거운 이유도 알코올로 인한 화학작용일 뿐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행복이 아니다. 이를 항상 자각하고 그 즐거움이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현실을 회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는 행복은 술집과 클럽의 바깥에 있다.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은 펑펑 쓸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돈으로 타인의 충성과 높은 권력은 얻을 수 있을지라도, 신뢰와 사랑을 얻을 수는 없다. 모두가 외로워 보여서 지켜보자니 안타까웠다.
반면 카모테스 섬의 사람들은 그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내는데도 활력 있고 생명력이 넘친다. 축제 기간에는 온 마을이 흥겹게 들썩거리고, 완벽한 외지인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뒷마당에서 나누던 수줍은 담소와 함께 둘러앉아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음식들을 나눠먹은 작은 식탁, 나를 위해 기꺼이 방을 내어주고 해먹에서 자던 배려심 넘치는 친구가 있었다. 그들의 에너지는 생전 처음 듣는 필리핀 노래를 몇 시간 동안 따라부르며 춤추게 했다. 시끌벅적한 저녁 파티가 끝나고 고요하게 잦아든 밤바다에 누워 바라보던 수많은 별들을 잊지 못한다. 그날 나의 주변에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밤새워 함께했다. 돈은 다운타운의 부자들보다 적을지라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그들의 마음은 그 누구보다 풍요로웠다.
이곳에서는 돈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동의하지만 꽤나 회의감이 들었다. 세부의 번화가나 클럽에서의 유흥은 확실히 재미있었다. 특히 edm의 천국이라 덕후인 내가 느끼는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행복은 바다를 유영하고 모래 위를 걸을 때 얻을 수 있었다. 스테이지에서 돈다발을 뿌릴 때보다 물고기들에게 빵으로 먹이를 줄 때 그 순간의 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것들을 보다 제한 없이 할 수 있지만, 역으로 돈에 압박받는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산물들을 누리고 있기에 충분히 부자이다. 돈을 좇다가 더 큰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다. 돈은 어차피 가치를 뒤따라오게 되어있다.
사람을 부리고 쓴다는 것은 내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직접 들은 말이다. 인적자원은 사업에 있어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이성적으로 회사와 맞지 않거나 실행력, 성과가 부족할 때는 다른 인재로 대체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앞에서는 가장 의지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나와 대화 한번 시도하지 않아 결국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으며, 그의 상급자와 대화한답시고 시작한 것은 일방적인 모욕이었던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힘든 것은 그 누구도 상호 간의 생산적인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제대로 꾸짖음 당하고, 나 또한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상호소통의 자리가 전혀 없었다. 상급자와의 면담도 나를 나무라는 수준이 아니라 그저 인신공격이었다. 아,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겠구나 싶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의지조차 사라졌다. 그동안 참아왔던 불편한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원래 이런 곳이고, 이런 사람들이고, 이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정이 떨어져버렸다.
어떻게 많은 것들을 일궈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는 된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저돌적으로 도전하고 재미를 쫓으며, 궁극적으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업과 일치한다. 그러나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목표를 이루기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중간 관리자의 중재와 상급자의 중립적인 판단이 필수적이다. 상황을 호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럿 있었음에도 모두 놓쳐버리고 1기를 실패라 불렀다. 비록 체계는 없었지만, 상호간의 수평적인 소통이 있었더라면 오히려 회사의 목표에 한걸음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딜 가나 사람이 사는 곳이고, 다들 싸우고 웃고 견디면서 산다.
파티에는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내 나이대의 자식이 있으신 어른들이 오시면 항상 나의 선택을 응원해주셨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그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이 내 선택의 특권이라고 하셨다. 담담하게 하시는 말씀들에 눈물을 참느라고 혼났다. 부모님께 말도 못 하고 떠나는 바람에 어떠한 지지도 직접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은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깜짝 놀라며 실망하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얻는 것처럼 뭉클했다.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대에도 여행을 하며 다양한 경험과 성취를 추구하는 멋진 어른들의 응원에 세부에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은 잔뜩 혼이 났었다. 두 달 넘게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한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상황에 대한 위로와는 동떨어진 텍스트 몇 문장이 나를 지탱했다. 그저 내 이름을 풀이해줬을 뿐인데 왜 그렇게 마음이 놓였을까 싶다. 무책임한 멍청이로 치부되던 날 유일하게 내가 똑똑하다고 해서일까, 내가 좋아하는 가을에 빗대어줘서일까. 또한 일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며 나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를 조언해 주었다. 이미 깨달은 것이지만 그 중요성을 되짚어주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국 도망치지 않고 일단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위로 아닌 위로의 다정함이 아직까지 따뜻하게 남아있다.
그들의 다정함은 의도하지 않았다. 원래 다정한 사람들이기에 평소와 다름없이 한 말들이 나에게 와닿은 것이다. 타인이 기댈 수 있는 그 본연의 다정함을 닮고 싶다.
이곳에 와서 1기 동기와 한참 고민 상담을 할 때,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 한마디가 나의 태도를 180도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사실 해결되는 것들은 많이 없고 오히려 악화될 때도 있었다. 단지 내 마음이 깃털처럼 홀가분해지며 그때 하지 못한 말을 후회한 적이 없다. 내가 나답게 사는 느낌이었다.
단지 솔직함은 나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거짓이 없을 때 의미가 있다. 제멋대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말,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배려가 없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무분별한 비난을 하는 것도 솔직함과 거리가 멀다. 또 누군가는 솔직함을 자기 방어기제로 이용한다.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강조한다. 나는 악의가 없어요, 무해해요, 라며 상대방도 나와 같기를 은연중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악용에 주의하며 감정에 솔직해지자.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자.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타인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중 하나이다. 내 주변의 관계는 단단한 신뢰의 끈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누군가 나를 속일 수 있다는 현실을 외면했다. 그래서인지 타인이 내게 한 거짓말들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느낌이다.
그곳에서 만난 부자들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친구로 생각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곁을 아예 내어주지 않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대부분이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이뤄내기 때문이다. 자신의 업이 그러한데 어떻게 상대방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나갈 수 있겠는가. 나 또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던 날, 굳건하고 절대적으로 믿어온 것이 처참히 무너졌다. 그날만 해도 누군가를 믿지 말라는 말을 세 번 들었다. 어느 국적할 것 없이 서로를 믿지 않는다. 척박하기 그지없다.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에서 끊임없이 의심을 한다. 신뢰가 박살난 후에는 여행 첫날임에도 나의 가치관이 잘못된 것인지,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고 하루종일 무기력했다. 결국 서로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토록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래 머물다가는 나 또한 물들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들을 가능한 멀리하기로 했다. 대신 신뢰를 기반으로 건강한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세부에서 가장 믿는 친구는 나를 달콤한 말로 현혹하지 않고, 마주친 현실을 꿰뚫어 진실되게 이야기해주었다. 많은 사람도 아니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오직 몇 사람이면 된다. 소중한 그들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수많은 속임수들을 견딜 수 있다.
3개월 동안 많이도 믿고 여러 번 배신당했지만 내 삶의 원동력은 여전히 타인과의 신뢰이다. 상대방의 거짓말을 간파하기 위해 첫 만남부터 서로를 탐색하는 분위기는 관계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어도 상대방을 또 믿고 싶고, 동시에 나를 향한 상대방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와는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상처받을까 겁나서 신뢰하지 않는 것은 태도는 결국 시도하지 않는 것이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는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으니 상처받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신뢰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거를 수 있다. 일단 그저 믿어라. 타인의 순수함을 믿어라.
필리핀의 울창한 야자수와 끝없이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 안에 가득 담아왔다. 매일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의 연속이다. 어딜 가나 맑고 깨끗한 동남아의 자연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날들의 온도와 짭짤한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 가장 그립겠지. 멀리서도 크게 불러 세상이 밝아지도록 환하게 웃던, 마주치면 두 팔 높이 흔들어주던 손, 서로의 어깨를 꽉 감싸던 어깨동무, 햇살 아래서 가고 싶은 곳을 향하고, 반갑게 안아주고 흔쾌히 초대해주며, 비를 맞으며 문 앞에서 기다리고, 무거운 다이빙 장비를 쓴소리 않고 옮기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이른 시간부터 풍기는 맛있는 아침 냄새, 눈을 뜨면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들. 노을과 강아지를 가장 좋아하는 순수함, 견디기 힘든 날의 위로,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언어로 소통하는 그 이상의 소통,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수많은 호의와 베풂들, 따뜻한 모든 것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들을 끊어내려 하니 괴로웠다. 내가 정이 많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는 아직 따뜻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