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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찬근 Sep 02. 2023

사상가를 ‘밑천’ 삼는 법

옥창준, 『냉전 초기 한국 국제정치 지식의 재구성』

약소국의 국제정치학이라는 난제     


 질문 하나, SF를 쓰는데 도움이 되는 전공은? SF작가 배명훈에 따르면 국제정치학이다. 그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논문까지(심지어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SF란 나름의 질서와 리듬을 갖고 돌아가는 자그마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나아가 (‘순문학’과 달리) 그 세계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문학이다. 그리고 국제정치학은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제격인 학문이고 말이다. 실제로 배명훈은 외교부의 연구 용역을 받아 화성에서 사람이 사는 시대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연구하기도 했으니, 누구보다 제대로 전공을 살리며 사는 셈이다.     


 문제는, SF작가를 제외한다면 국제정치학이 활용될 분야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흔히 “고래 등 사이의 새우”로 비유되는 한국에서는 말이다. 이제 약소국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강대국의 입김에 휘둘리는 한국에서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어내고 실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배명훈도 국제정치학이란 원래 “제왕의 학문”이고, 자신이 “동기들 중 전공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겠는가.(배명훈, 『SF 작가입니다』, 문학과지성사, 2020, p.22.) 그렇다면 “한국에서 국제정치학 공부하기”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옥창준의 『냉전 초기 한국 국제정치 지식의 재구성』(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2022.)은 한국이 지금보다도 훨씬 초라했던, 약소국이라는 이름표가 어색하지 않았을 냉전 초기 ‘한국’ 국제정치학을 고민하며 고군분투한 여러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이 딜레마에 도전한다. 먼저 ‘한국’이란 수식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비단 국제정치학뿐 아니라 한국에서 이뤄지는 학문 활동에 해당하는 이야기니까. 누군가는 ‘한국’ 학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른바 “글로벌 지식장”에서 상징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 여긴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한국적 OO학”(여기엔 비단 철학이나 사회학뿐 아니라, 심지어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까지 심심찮게 들어가곤 한다)을 창안하려는 열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한국의 ‘독창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옥창준은 두 입장 모두에 비판적이다. 대신 그는 한국이라는 ‘장소’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개념인 장소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외국의 학문이 한국에 미친 영향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한국의 현실에 맞게 해석하고 전유코자 했던 여러 시도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게끔 돕는 유용한 틀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미소대립의 최전선에 놓여 분단과 전쟁을 겪은 냉전 초기 한국이라는 장소는, 국제정치학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고 재구성하게끔 북돋았는가? 옥창준의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그는 카를 슈미트로부터 “장소 확정(뿌리박음)”이라는 관점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하지만(p.30), (명시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을지언정) 장소에 대한 옥창준의 주목에는 동주 이용희의 영향 역시 적지 않았으리라 지레짐작해본다.     


지정학, 국제정치학, 국제사회론: ‘한국’ 국제정치학의 가능성과 한계     


 논문은 “지정학”과 “국제정치학”, “국제사회론”이라는 세 프리즘으로 한국 국제정치 지식이 (재)구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이 중 갓 해방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영향력을 발휘한 건 전통적인 지정학이었다. ‘외교’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았던 식민지 조선에서 국제정치학이란 영미(英美)의 낯선 학문이었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잠시 열렸던 “하나의 세계”의 가능성이 냉전질서의 구축과 함께 급속히 닫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세계” 사이의 대립은 한국의 지식인과 언론인들로 하여금 세력균형과 합종연횡이야말로 한국이 살아남을 유일한 계책이라 여기게 만들기 충분했고, 이 과정에서 전전(前前) 독일과 일본의 지정학이 다시금 주목받았다. (해방공간의 복잡한 담론지형은 김봉국의 『냉전과 투쟁』을 겹쳐 읽으면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지정학이 ‘부활했다’ 해서, 그 내용이 이전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지정학이 소환된 상황이 달라졌으며, 무엇보다 이를 활용하는 주체가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조선이 아닌 독립국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표문화의 『조선지정학개관』은 해방공간의 한국(엄밀히 말해 책이 1947년에 나왔으므로 조선이긴 하지만)이라는 장소에서 ‘달라진’ 지정학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만주어와 몽골어를 공부하고 만주국과 북중국에서 근무했던 그는 바꿀 수 없는 ‘숙명’과 주체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얼마든 바꿀 수 있는 ‘운명’을 구분하고,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각축장이라는 조선의 지리적 ‘숙명’을 완충국의 건설을 통해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물론 『조선지정학개관』이 나온 지 1년 만에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며 완충국의 꿈은 물 건너갔고, 그 2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표문화의 구분을 빌리자면) “대륙적 성격을 지닌 북부 조선”과 “해양적 성격을 지닌 남부 조선”은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길을 걸었다. 표문화 역시 1955년 1월 출간한 『정치지리학개요』에서 이전과 달리 반도를 대륙과 해양의 정체성을 모두 지닌 곳이 아니라 명백히 해양적 정체성을 띤 곳으로 재정의함으로써 달라진 현실에 ‘적응’했다. 그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중립화 통일론에도 부정적 태도를 취하며 “자유 진영”의 방공(防共) 군사동맹만이 유일한 대안이라 일갈했으나, 이후 독일이 아닌 영미 지정학이 주류를 차지하는 가운데서도 여러 국제정치학자들은 ‘숙명’을 극복할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표문화의 후예였다.      

 독일과 일본의 영향이 짙게 배인 지정학이 아닌, 영미의 학문이었던 국제정치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한국이라는 장소는 여전히 중시되었다. 옥창준은 두 명의 국제정치학자 조효원과 이용희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학문 수용의 ‘주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미 1955년 《경향신문》 기사에서도 “미국의 저명한 학자 로센거, 모겐소, 슈만 씨 등의 저서를 슬쩍”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미국산 국제정치학”의 대명사 조효원 대 장소의 논리에 주목한 “한국적 국제정치학”의 대명사 이용희라는 도식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옥창준은 국제정치학 ‘개론서’에 해당하는 조효원의 『국제정치학』과 이용희의 『국제정치원론』을 분석한다. 이용희가 ‘독창적인’ 국제정치학을 창안했다는 사실이야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인 만큼, 흥미로운 건 오히려 조효원 쪽이다. 그는 모겐소로 대표되는 미국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을 과감하게 생략·전유·재구성함으로써 약소국 한국에 맞춤한 외교 전략을 수립코자 했다. 말하자면 조효원의 『국제정치학』은, 박진영이 『번역과 번안의 시대』(소명출판, 2011.)에서 조명한 “번역/번안문학”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셈이다. 반대로 이용희 역시 미국 선교사가 세운 미션스쿨로 일제의 “관학 아카데미즘”으로부터 일정한 자율성을 확보했던 연희전문에서 수학한 덕에 ‘비일본파’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조효원과 이용희 모두 영미 국제정치학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고 한국의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사유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한국 국제정치학을 둘러싼 고민과 논쟁은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벌어지기도 했다. 그 탄생이 1948년 국제연합(유엔) 총회를 통해 가능했던 만큼, 신생 대한민국에서 유엔이 상징하는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굉장히 높았다. (1960년대 국회회의록을 봐도 한국이 “유엔이 만든 나라”라는 사실은 유엔 승인을 얻지 못한 북한에 대한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자부심과 정당성의 원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유엔 내셔널리즘” 역시 내 관심사 중 하나. 예송논쟁으로부터 “주자학 내셔널리즘”의 가능성을 엿본 자현 킴 하부시의 “Constructing the Center” 비슷한 글을 써보면 재밌을 것 같다.)     

 

 이처럼 유엔과 국제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역시 논쟁의 대상이었는데, 특히 한국전쟁 당시 국제연합군의 개입에 대한 해석이 문제로 떠올랐다. 먼저 화두를 던진 이는 국제법학자 박재섭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국제법을 주제로 삼은 첫 박사논문인 『국제법에 있어서의 법의 지위』에서 국제법을 일종의 ‘자연법’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취한다. 냉전으로 갈라진 “두 개의 세계”에서도 국제법은 국제사회를 규율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국제연합군 파병은 국제연합의 집단안전보장 조치라는 것이 박재섭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박재섭의 주장에 맞선 이가 이한기였다. 이한기는 박재섭이 현실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영구평화론”에 가까운 그의 의견은 불완전한 현실에 결코 통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이한기는 일정한 ‘요건’이 갖춰지면 국제법상 인정되는 전쟁이 가능하다는 박재섭의 견해가 “역설적으로 일정한 요건이 확립되면 ‘정당한 전쟁(正戰)’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법의 보편성을 신뢰하며 국제연합군의 파병을 옹호한 박재섭과 냉철한 현실론에 근거해 법과 정의를 구분한 이한기의 대립은 김학재가 『판문점 체제의 기원』(후마니타스, 2015.)에서 제시한 “칸트적 평화”와 “홉스적 평화”를 떠올리게 한다. 김학재가 ‘사후적으로’ 제시한 평화의 모델을, 1960년대의 두 국제정치학자는 ‘선험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용희 아닌 ‘나머지’의 사상사 쓰기    

 

 사실 옥창준의 박사논문을 처음 읽은 건 지난 2023년 1월이었다. 그때도 무척 재밌게 읽었고(최근 읽은 박사논문 중 소위 ‘읽는 맛’이 가장 탁월하다!), 목차까지 대충 짜놓은 상태였음에도 반 년 이상 서평을 쓰지 못한 이유는 그때 떠올린 결론이 어딘가 밋밋했기 때문이다. “미중대립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한반의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한국의 장소성에 천착한 국제정치학을 고민한 선학들로부터 영감을 얻자!”는 너무 빤한 이야기지 않은가. 이 논문으로부터 무언가 더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를 쉽사리 떠올릴 수 없었다. 그 ‘무언가’를 발견한 건 나도 논문이란 걸 써보려고 최근 나온 한국 현대 지성사/사상사 연구서들과 옥창준의 논문을 ‘겹쳐’ 읽으면서다.      


 다른 글들과 비교했을 때 옥창준의 논문에서 두드러지는 건 그 문제의식이다. 그는 결론에서 “‘한국적’ 지식의 생산에 있어 이 시기(냉전 초기-인용자)의 경험은 일정한 울림”을 준다며, “냉전이라는 구조와 여러 지식의 조합 속에서 현실을 읽어내면서 가까스로 재구성되는 과정에 가까웠”던 한국 국제정치학사(史)의 “울퉁불퉁함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눈으로부터 새로운 상상력이 출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pp.218~220.) 즉 옥창준은 자기 연구의 현실적 ‘쓰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 치열함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한편(문제의식이 살아있는 글을 읽는 경험은 참 드물고, 그렇기에 짜릿한 일이다),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실제로 옥창준은 한국 국제정치학사의 “울퉁불퉁함”을 보여주고자 굉장히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단순히 그가 한국의 ‘장소성’에 주목했다거나,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외래학문의 유입과 그 해석·전유의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옥창준의 ‘세심함’은, 이용희에 대한 그의 서술에서 잘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듯 이용희가 “한국적 국제정치학”의 창시자라는 사실은 이 분야에 약간의 관심만 있다면 모두 아는 이야기다. 그런 만큼 한국 국제정치학사는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게 이용희 중심으로 쓰일 수밖에 없을 터임에도, 옥창준은 이용희가 아닌 ‘나머지’에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논문의 핵심 개념인 “장소”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구태여 이용희가 아닌 슈미트만 언급한 것 역시 글이 이용희 중심으로 읽히는 일을 경계했기 때문이리라.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요컨대, 옥창준의 논문에선 이용희와 ‘나머지’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느껴진다. 이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기도 한데, 이용희를 빼놓고 한국 국제정치학사를 쓰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치 마루야마 마사오를 빼놓고 일본 정치사상사의 역사를 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상 마루야마 마사오를 지도 삼아 패전에서 안보투쟁에 이르는 일본의 지성사를 재구성해놓고, 마루야마가 당시 일본의 ‘공통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식인이기에 그를 골랐다며 시치미를 뚝 떼는 오구마 에이지와 비교했을 때, 의도적으로 이용희의 비중을 떨어뜨리려는 옥창준의 균형감각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오해를 피할까봐 이야기하자면, 오구마 에이지의 『민주와 애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언젠가는 김대중을 주인공 삼아 이 책의 한국판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아마 안 될 것 같다.)     


 그런 만큼, 다소 역설적이지만 독자는 옥창준의 논문을 읽으며 이용희가 주인공이 아닌 한국 국제정치학사란 과연 가능한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울퉁불퉁함”을 드러내려는 옥창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용희는 정말 곳곳에서 튀어나와 그 영향력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용희는 단지 역사 속에서만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장소성에 대한 그의 독특한 관심은 후학들에게 꾸준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고, 장인성을 비롯한 많은 국제정치사상 연구자들이 이용희로부터 자극을 받아 훌륭한 연구를 여럿 남겼다. (어쩌면 배명훈도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 연구의 ‘대상’이 아닌 ‘방법’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이용희는 한국의 몇 안 되는 ‘사상가’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용희가 될 수 없었던 ‘나머지’다. 이용희만큼이나 서울대 외교학과와 한국 국제정치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김용구가 다름 아닌 자신의 연구회고록 첫머리에 이야기했듯, 이용희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김용구의 말마따나 당대 최고의 선생들 밑에서 배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용희의 운은, 그가 서울대 외교학과에 자리를 잡고 훌륭한 후학들을 꾸준히 배출했다는 데 있다. 흔히 내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게 아니라 내가 내 아버지를 낳았다고,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내가 태어남으로써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용희 역시 최고의 대학에서 최고의 수재들에게 장소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상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았겠는가.      


(물론 정치사상사가 다른 어떤 학문보다 ‘비평’의 성격이 강한 만큼, 후학들이 다소 ‘벙벙한’ 그의 학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장 역사학은 스스로 고백하듯 어느 순간부터 학자보다 논객에 가까워진 강만길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게 ‘자원화’할 수 있는 선학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용희 아닌 ‘나머지’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나아가 이들의 사상을 어떻게 현재를 이해하는 ‘밑천’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옥창준의 논문을 읽으면 자연히 이런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이 단순한 학술사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쓰임’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지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점점 ‘큰 이야기’를 기피하고 현실과의 직접적 연관을 애매하게 처리하는 연구가 주류가 되는 가운데, 학문적 엄밀성과 깊이를 갖추면서도 이런 고민을 포기하지 않은 옥창준의 논문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특히 20세기 한국의 학자들이 “물로켓”에 불과했다며 비아냥대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글에서는 냉전 초기 한국이라는 장소를 적극적으로 사유한 국제정치학자들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느껴져 괜히 위로를 받기도 했다.  

    

 여전히 “한국적 무언가”를 궁리하고(내 안의 NL적 모먼트!) 과거를 밑천 삼을 방법을 고민하는 ‘고루한’ 사람으로서, 옥창준의 논문은 굉장한 자극과 응원이 된다. 특히 그가 이용희라는 ‘쉬운 길’을 거부하고, 그 ‘나머지’ 역시 역사화하고 자원화하고자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 좋았다. 앞으로도 옥창준이 이 ‘어려운 길’을 묵묵히 걸어주길, 그래서 내게 사상가를 밑천 삼을 방법에 대한 좋은 가르침을 주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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