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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tacura Jan 27. 2023

(1) 직장을 그만뒀다

결국 경단녀가 되어 버렸다


서른넷에 직장을 그만뒀다. 

단언컨대, 나의 의지는 단 1%도 포함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스물다섯에 대학을 졸업한 후 10년 동안 다른 일은 해 본 적도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끝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남편의 발령지는 아주 먼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고도 하루 반이나 걸려야 당도할 수 있는 곳, 지구 반대편 남미의 한 국가였다. 

내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년간 떨어져 사는 부부가 되어야 했다. 

부부가 4년이나 떨어져 사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난 선뜻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3~4년이나 되는 공백을 예정하고, 

아이 엄마가 되어서 돌아올 생각을 하며 직장을 떠난다는 건, 

말 그대로 떠나는 것,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을 망설이다, 남편 주재 기간 3년을 남기고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그렇게 직장을 떠나 경단녀가 되었다. 

10년간 쉬지 않고 일을 했으므로, 처음 얼마 간은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며, 심지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사실 휴식 말고는 할 게 없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을 휴식과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할 게 없어졌다.


난 게으른 편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었다. 

너무 일어나기 힘들어서 울면서 일어난 적도 있다. 

지각도 많이 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번엔 일어나고 나서가 힘들었다. 

남편이 출근한 후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딱히 할 게 없었다.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번도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늘 해야 할 일을 차례대로 쳐내며 해오는 생활만 하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져 버린 게 어색하고 불편했다.


전적으로 그래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 직업 후보군이던 통번역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 전공도 아니고, 중국어를 많이 사용하던 직업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지난 수년간 중국어를 거의 사용한 적도 없지만, 무작정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너무 무력해질 것 같았다.


외국에서, (중국인은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중국어 학원은 찾아볼 수 없는) 

남미의 한 도시에서 중국어 통번역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시작부터 어려운 것이었다.

"CCTV를 매일 들을까?"

"단어를 외워볼까?"

"하루에 조금씩 섀도잉을 해볼까?"

막상 시작하려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중국어 공부는커녕 공부 자체를 해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궁리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동아줄을 찾았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엔 딱 한 군데에서만 서비스했던 

중국어 통번역대학원 준비반 온라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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