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
기억력이 나쁜 편이다. 학교 성적이 곧잘 나온 것이 머리가 나쁘지 않은 증거는 아닌 것 같다. 무슨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어렸을 적 기억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기억나는 것이 정말 별로 없다.
여덟 살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렸던 건 아니었는데 생각날만하지 싶은 일들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초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임종의 순간이든, 아직 어렸으니 그 전이든 아빠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빠를 만났을 때가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젊은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두고 떠나신 아빠는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텐데.
아빠의 죽음과 관련한 기억은 딱 한 장면뿐이다. 눈보라를 헤치며 언덕 위를 오르던 운구행렬. 이 마저도 실제 한 경험인지, 상상으로 만들어낸 허상인지 모르겠다. 엄마한테 물어보면 좋으련만 엄마도 이젠 내게 없다.
아빠가 잠드신 곳은 높은 언덕 위였다. 성당에서 관리하는 천주교 공동묘지였는데 언덕 중턱까지 빼곡히 자리 잡은 산소들을 요리조리 피해 운구행렬이 올라갔(을 것이)다. 명절마다 추도 미사를 하는 작은 성당이 언덕 아래에 지금도 있는데 그 성당에서 몸을 녹인 조문객들은 1월의 차가운 눈바람을 헤치고 언덕을 올라 30대 중반의 젊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했다. 녹지 않은 눈과 차가운 바람 때문에 아이들은 성당 어딘가에서 어른들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내 옆을 지키던 어른은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아빠를 보내 드리러 사람들과 함께 올라가셨을 텐데 7살짜리 상주와 나는 누구와 함께 있었지...
그에 대한 기억마저 사라지면 사람은 두 번째 죽는다고 하는데, 머리 나쁜 딸을 둔 우리 아빠는 벌써 두 번 다 돌아가신 것 같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원래도 가진 게 별로 없었고, 그나마도 점점 지워져 버리고 있다. 아빠가 낳은 나와 내 동생이 이 세상에 아직 살고 있다는 거 말고는 아빠는 이제 모두 지워져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아 슬프고 미안하다. 자식대에서 조차 이어지지 못한 기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