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가 죽었다.
어렸을 때 2NE1을 좋아했다.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좋아한 여자 아이돌이다.
동경은 대상의 장점을 스스로에게 중요한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여자 아이돌을 동경하는 것은 여러모로 나 자신을 부정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여돌처럼 예쁘지도, ‘여성스럽’지도, 귀엽지도, 애교에 능숙하지도, 청순하지도, 잘 꾸미지도,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지도 않았다. 여자 아이돌을 동경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초라하게 보아야만 했다. 거울을 확인하고, 몸무게를 줄이고, 예쁨 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2NE1을 동경하면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실력파’라는 단어가 여자 아이돌 앞에 붙는 것을 처음 들었다. 나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소녀시대 같은 여성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노력하면 ‘실력파’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중학교 3년 동안 노래방만 가면 ‘I don't care’를 불러 제꼈다. 조금도 상관 없다니, 네가 내 삶에 중요하지 않다니, 이보다 더 통렬한 제스쳐가 어디 있는가.
그러니까, 2NE1은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동경할 권리를 줬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노래하는 ‘Tell me' 대신 ’누구도 날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Can't Nobody'를 부르며 컸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삶의 한 구석을, 내가 나의 삶을 ‘예쁜 여자’가 아닌 ‘멋진 사람’으로 상상해낼 수 있었음을,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리고, 2NE1은 해체됐다.
물론 연차가 찬 아이돌이 해체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해체되기까지 2NE1은 가혹한 순간들을 감내해야 했다. 여성 아이돌이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방송활동은 많지 않았고, 회사 대표는 ‘너넨 못생겼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툭툭 던졌으며, 데뷔 때부터 꾸준한 외모비하와 악플에 시달렸다. 그 포화 속에서 그들이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내적 전쟁을 치러냈을지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2017년 1월 21일, <안녕> 뮤직비디오가 업로드됐다. CL은 거기에서
우리 다시 만나는 먼 그날까지 안녕 안녕
Does anyone know Does anyone know how it makes me feel
(안녕 앞에서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라고 노래했다. 당연히, 모른다. 그들이 견딘 순간들 옆에 난 없었으니까. 변화의 선두에 선 사람은 총알받이가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이 일군 변화의 과실을 열심히 받아먹었으나, 그 총알을 같이 맞지 않았다. 그 총알들은 오로지 그들 넷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그룹이 그런 방식으로 끝이 난 것이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마음을 찢어 놓을 것인가에 대해,
나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들은 얼마나 혼자였는가. 나는 그들을 얼마나 혼자 두었는가.
그리고 월요일, 그가 갔다.
내가 페미니즘을 접하며 가장 중요시했던 건 ‘정확해지는’ 것이었다. 정확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오래 고민하고 행동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운동과 폭력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 싫었고, 넓은 의미에서의 폭력(부정확함, 단순화, 보편화 등) 없는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운동에 내포되어 있는 폭력을 지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쉽게 선언하지 않는 것, 삶을 단순화하지 않는 것, 그리하여 그 복잡함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것의 옳지 않음과 옳음을 가닥가닥 잘 뜯어보는 것이 내 목표였다.
반면 그는 많이 발언했고 많이 행동했다. SNS에 그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나는 그의 어떤 행동을 지지했고, 어떤 행동에는 반대했다. 동일한 행동도 어떤 결에서는 동의했지만, 저런 결에서는 반대했다. 그에 대한 욕이 범람하는 댓글창을 보면, 그 결을 섬세하게 뜯어 어떤 것에 동의하고 어떤 것에 반대하는지를 적기가 피로해졌다. 나는 대체로 댓글창에 자취를 남기지 않았고, 정확하게 집어 질문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심 그가 사과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쏟아지는 욕 사이에서 버티고 서서 자신의 행동들이 ‘사과할 만한 행동’이라는 걸 인정하기를 거부해주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그를 욕하는 목소리들이 기분 나빴지만, 기분 나빠하며 그저 지나쳤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가 죽었다. 죽었다. 죽고야 말았다.
그의 죽음 앞에서 정확함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는 그 ‘쏟아지는 욕 사이에서 버티고 있음’에 대해서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버텨냄을 대체 뭐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오는 학생의 기특함 정도로 생각한 건가.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제대로 보지 않은 거다. 행동과 사유를 들여다본답시고 뒷짐 지고 앉아서, 결국 사람은 한 순간도, 보지, 않은 거다.
작가 김소연은 <마음사전>에서 ‘옹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존경이 저절로 생긴 마음가짐이라면, 옹호는 일종의 다짐이다. 대상을 부분이 아니라 통째로 껴안는다. 대상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나 무조건적인 덮음 같은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다짐이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미흡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미흡함을 끌어안는 자세, 그렇기 때문에 거칠고 난폭하며 편협하지만, 그 편견의 자리에 기꺼이 서 있겠다는 각오인 셈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옹호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온전히 정확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서, 우리는 ‘통째로 껴안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운동을 함에 있어 우리는 서로의 용기여야 한다. 우리가 손을 잡게 되는 건, 연대하게 되는 건, 우리가 사유여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깃발에는 그 깃발을 든 사람의 손이 있다.
나는 평생토록 ‘우리는 그를 잃었다’고 쓸 수 없을테다. 나는 그의 ‘우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우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대신 ‘틀리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저 위에 서서 지적질이나 해댔다. 이건 맞아, 이건 틀려.
‘진리가 죽었다’고 쓸 수도 없다. 나는 한 번도 그를 사람으로서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가 죽었다’ 뿐이다.
그게 너무나 황망해서, 누구도 없는 밤에 쓸 수 있는 유일한 말을 계속 쓴다.
그가 죽었다.
그가 죽었다.
그가. 죽었다.
도대체, 그 앞에서 그 무엇이 의미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