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부산에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사촌 형에게 부탁해 도배 반장님을 소개받아
그를 따라다니며 도배일을 한참 배우고 있을 시기였다.
나는 26살이었고
그때는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도저히 돈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식으로 기술직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도 묘한 일처럼 느껴진다.
도배라는 일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다.
팀마다 다르지만 내가 있던 팀은 나까지 4명의 고정된 인원에 상황에 따라서 2~3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오야지가(반장을 그렇게 부른다.) 오더를 받아 현장 주소를 메시지로 팀원들에게 남겨주었는데
이를테면 ’ 이번 주 수요일. 경기도 일산구 장항동 어디쯤.’이라는 식이다.
도배는 일용직이므로 고정 스케줄 같은 건 없었지만
나는 2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일을 하면서 반장님의 문자에 못 간다는 대답을 한 적이 없다.
‘사촌 형의 소개로 온 주제에’라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
그런 것보다도 무언가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감이 나를 집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반장님은 가정집 개인 의뢰부터 대기업 하청까지 닥치는 대로 일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와 같은 시기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일당도 더 높았다.
무엇보다 다음 의뢰가 어디일지 누구도 알 수 없어서 문자를 받으면 여행을 떠나듯 출발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는 그런 것들이 스트레스라기보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20대는 그런 나이인 것이다.
도배가 아니었다면 스스로는 도저히 찾지 못했을 것 같은 동네부터
아주 유명한 관광도시들까지 사시사철 감상하는 맛도 있었다.
운전도 그 시기에 많이 늘었고, 일한 만큼 돈도 꼬박꼬박 들어왔기 때문에
도배는 불안했던 20대 시절의 내 상황을 정말 많이 진정시켜 주었다.
도배를 시작하고 20개월쯤 지난 어느 여름날
우리 도배팀은 부산 해운대에 있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시공 현장에서 2주간의 일을 하고 있었다.
주말은 개인 시간이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는 토요일 서면의 중심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려서도 달리는 것은 꽤 좋아했지만
중고등학교 운동부를 했을 때도,군대에서 하는 구보나 체력측정도 내가 원해서 달린 적은 없었다.
다 크고 난 뒤에 처음 스스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어떤 조건에 의한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로도 나는 도배일을 하는 동안에 때때로 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 개월이 더 지난 다음 해 봄에
나는 도배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J도 4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사했다.
우리는 망원동에 둘 만의 작업실을 얻었다.(작업실이라기엔 아주 작고 낡은 단칸방이었지만.)
하얗게 페인트칠한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맨션의 단칸방에서
J와 나는 일러스트, 디자인 작업을 하고 빈티지 소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첫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800m도 제대로 달리지 못했지만
금방 5km, 10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장경인대를 다친다던가
발바닥 통증 같은 크고 작은 부상으로 몇 주간 쉬어야 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꾸준히 달렸다.
그러고 보면 달리기는 이상한 운동이다.
달리기 시작하면 잡다한 생각이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스스로도 놀랄 정도이다.
달리는 발과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생각들도 다 떨어져 나가고
호흡만이 남는 고요한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땐
‘죽겠다는 생각도 한 놈이 이 정도도 못 버티나’
하는 생각으로 60초를 세기도 했다.
최근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처음 달리던 시기보다)
‘러너스 하이’와 관한 질문들도 많이 한다.
경험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러너스 하이라는 것이
뭔가 달콤하고 극적인 쾌락을 선사하는 개념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 경험에는 러너스 하이보다도
러닝이 끝나고 호흡이 돌아오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달리기가 끝나고 나면
오늘도 달렸다는 성취감이나 자신감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거친 호흡이 돌아오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과 마음이 파동 없는 수면처럼 고요하고 명확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햇수로 4년이 되었을 때부터
철봉 위주의 맨몸운동도 시작했다.
러닝이 나를 덜어내는 운동이라면
철봉은 말하자면, 나를 더하는 운동이다.
처음엔 내 몸도 무겁고, 손바닥도 아팠다.
러닝과 마찬가지로 소원근 통증이나 굳은살이 배기고, 떨어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지나야 하는데
그런 고통들이 어느 날 몸에 착 달라붙어버리는 감각으로 체득된다.
33살이 되는 해에 나를 큰 상실감에 빠뜨리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에 다다랐을 때에도
나는 러닝화 끈을 묶었고,
맨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마다 달리고, 매달렸다.
사람은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힘든 것은 힘든 대로 남겨두고 호흡을 하나하나 세어 나갔다.
감정의 해일이 나를 덮칠 때
늘 그것에 휩쓸리던 기억이 있다.
숨을 쉴 틈도 없이 휩쓸리며 물을 먹고, 겨우겨우 얼굴만 수면 위로 내밀던 순간들.
여전히 허우적거리기는 한다.
단지, 내 몸이 그전보다 훨씬 오래 버틸 수 있고,
‘어쩌면 헤엄쳐서 나갈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자기 신뢰 같은 것이 생겼다.
사람의 기분은 그 사람의 몸 상태라고 한다.
불안함은 어쩌면 약함에서 온다.
화남도, 슬픔도 결국은 약함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허우적거리기는 하지만
숨을 쉬는 법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제야 나는 비로소 제대로 숨 쉬는 법을 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