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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 겨울 May 10. 2019

스테이크 아닌 스테이크 같은

사랑의 맛, 쇠고기 구이

 남편 생일날, 이것저것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기에 생일상으로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준비했다. 고기는 수입육으로 부위는 부챗살과 업진살이다. 원래는 살치살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부챗살과 업진살로 구운 스테이크는 스테이크라고 하기엔 다소 얇은 감이 있다. 스테이크든 그냥 쇠고기 구이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구운 고기! 쇠고기를 스테이크처럼 썰어서 먹으면 스테이크인 거고, 가위로 잘라먹으면 그냥 쇠고기 구이인 것이다.


 고기는 소금과 후춧가루, 식용유를 발라 잠시 두었다. 노란 옥수수는 소금과 설탕으로 간한 물에 삶은 뒤 물기를 뺐다. 두툼한 르크루제 그릴에 버터를 녹이고, 삶은 옥수수와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구울 때 팬의 선택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번에 내가 사용한 팬은 르쿠르제에서 나오는 사각 무쇠 주물 그릴이다. 르쿠르제 그릴은 몇 년 전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때, 사고 싶어서 가격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라 포기했다가 마침 모아둔 상품권이 있어서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서 구입했다.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이월 상품뿐만 아니라 약간의 흠이 있는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 흠이라는 것이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고 거의 외관상 보일 듯 말 듯한 수준이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정상 제품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바닥이 약간 휘어져서 반듯하게 놓이지 않는 그릴과 빨간색 에나멜 코팅한 방울(?) 정도가 윗면에 덜 묻은 제품 중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갖고 있는 조리 도구 가운데 가장 고가에 속하는 것인 만큼 사용 방법을 잘 익혀서 오래도록 두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무쇠 주물 그릴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적잖이 실망했다. 광고에 나오는 멋스러운 그릴 자국이 전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릴 자국 그게 뭐라고 나는 헛돈을 쓴 게 아닐까 자책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본전 생각에 더 자주 열심히 사용했다. 그렇게 여러 번 연습하다보니 고기를 올리기 전에 그릴을 얼마나 달궈야 할지에 대한 감이 생겼고, 결국 원하는 정도에 거의 부합하는 그릴 자국을 얻게 되었다. 그릴 자국을 더욱더 선명하게 내려면 그릴 프레스를 사용하면 된다고도 하는데, 육즙을 가득 머금은 고기를 무거운 것으로 눌러두면 육즙이 빠져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릴 자국이 조금 연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구워 먹는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버터를 바른 그릴에 고기를 구우면 연기가 많이 난다. 그래서 환풍기를 풀로 가동하고 구웠다. 버터는 고기에 치덕치덕 많이 발라주었다. 버터 자체가 동물성이어서 쇠고기 구울 때 발라주면 고소함과 풍미가 더해진다. 느끼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먹어본 적은 있지만 막상 구입하게 되지는 않는 아보카도를 구입해보았다. 한 개에 무려 3,000원가량이나 한다. 아보카도는 반으로 자른 다음 씨를 빼고 다시 반으로 잘라 껍질을 벗겼다. 아보카도 속살을 착착 썰어서 소금, 후춧가루로 간했다. 그런데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남편인지라 역시 안 먹었다. 앞으로는 아보카도를 잘 안 사게 될 것 같다.

 버터에 구운 옥수수와 아보카도를 가니시로 내고, 씨겨자도 한 티스푼 냈다. 일반적인 두툼한 스테이크는 굽자마자 내지 않고, 포일을 덮어서 가스레인지 주변에 잠시간 두었다가 상에 내는데, 이 고기는 얇게 저민 부위여서 상차림이 끝난 후 뜨거울 때 냈다.


 메인 메뉴가 서양식 스테이크지만, 생일상에 미역국이 빠질 수는 없다.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쇠고기 미역국이 아닌 황태 미역국을 끓였다. 맛국물은 시판 곰탕 국물로 하였다. 구수하게 들깻가루도 듬뿍 넣었다. 그러나 고기 마니아인 남편은 살짝 아쉬워했다(뭐 그리 불만이 많은 건지. 끄응).

 텃밭에 넘쳐나는 쌈 채소도 잔뜩 따와서 겉절이를 만들었다. 고춧가루, 까나리액젓, 설탕, 참기름, 식초, 깨만 있으면 뚝딱뚝딱 만들 수 있다. 남편은 스테이크를 먹을 때 샐러드보다 겉절이를 내주면 더 잘 먹는다. 입맛이 아주 토속적이다.

 후식으로 큰 수박은 조금 부담스러워서 멜론만 한 망고 수박을 구입했다. 속이 노랗고, 일반 수박에 비해 당도가 살짝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보관이 편하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점은 큰 장점이다. 

 외식하는 비용보다는 훨씬 저렴하게 집에서 스테이크를 먹은 날. 나는 식구들에게 갓 구운 고기를 먹이기 위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고기를 날랐다. 먹으면서 식은 고기는 다시 데워서 서빙을 했다. 남편의 생일이었지만 아이들도 맛있다며 잘 먹어서 기뻤다.

 남편과 나이차가 많이 나다보니 함께 세월을 보낼수록 남편의 흰머리, 깊어진 주름, 굽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편의 어깨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이제는 늘 보인다. 욱하는 성질을 못 이기고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때가 많지만 돌아서면 내가 좀 더 참을걸, 좀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를 하곤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좀 더 다정했으면,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좀 많이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다른 무엇보다도 건강하기를, 자신으로서의 삶을 조금 더 즐겨주길 바란다.



<오늘의 식단>

◆ 사골 육수와 들깻가루로 구수한 맛을 더한 황태 미역국

◆ 부챗살과 업진살 구이

◆ 우리 집에서는 샐러드보다 더 인기! 쌈 채소 겉절이

◆ 노란 과육이 인상적인 망고 수박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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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위클리 매거진 <소박하고 다정한>의 마지막 연재 날입니다.

시원섭섭하네요. 아니, 사실은 많이 섭섭합니다.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보통의 아줌마인 저에게 출간이라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진 것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주신 그리고 한결같이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신 독자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저는 또다시 저의 자리로 돌아가 매끼 밥을 짓고, 밥을 짓듯 글을 지으며 다시금 독자님들 곁에 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매거진 <일상의 집밥>과 다른 매거진의 글들 역시 느릿느릿하지만 변함없이 이곳에 올릴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묵직하지만 따뜻한 벗으로 함께 해 주시길요!

씨 유! ^___^



 2019년 5월 10일, moment_yet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moment_yet)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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