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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Jun 22. 2020

파리에서 3번 이사하다

서울이 낫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집이 왜 하나도 없지? 난 어쩌면 공주처럼(?) 컸을지도.." 초등학교 때 엄마가 나를 "공주야~"라고 부른 적은 있어도, 사실 공주와 거리가 먼 편인 나는, 이번에 이사할 집을 보러다니면서 스스로가 어쩌면 '공주과'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지금도 2002년식 빌라에 살고 있으면서 보러다니는 집들의 노란 문턱이나 바래진 벽지는 얼마나 싫던지. 게다가 해가 안 드는 건 정말정말 싫고, 1층은 더더욱 안 되고, 가까운데 모텔이 있는 것도 별로였다. 문득 '내가 공주인가,'하며 스스로에 대해 반추하다보니 파리에서 살았던 3군데의 집이 떠올랐다. 내가 살았던 집들 중에서 가장 월세가 비싸고 가장 후진 집들이었다.


파리는 22살때 교환학생으로 갔다. 이왕 살거라면 유럽의 수도에서 살아보자는 단순하고 무지몽매하기 그지 없는 생각은, 어마어마한 주거비 폭탄으로 날아왔다. 나는 결국 첫 집으로 Voltaire라는 9호선역에 위치한 한 아파트의 작은 방을 선택한다. 그 방은 아파트 집주인이 홈스테이를 놓는 방으로 그럭저럭 쓸 만 했는데, 지독하리만큼 싫었던 부분이 '샤퐁'이 시도때도 없이 내 방에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샤퐁'은 누구냐? 바로 집주인 할머니가 키우는 치즈 태비 고양이었다. 아주 예의가 없게 커서 헐거워진 내 방 미닫이 문 틈 사이로 쳐들어와 나의 햄을 훔치거나 수면양말을 신은 내 발을 쥐새끼로 인식했는지 사냥을 하곤 했다. 덕분에 엄청나게 발목이 긁혔는데, 가끔 샹젤리제 거리 같은 데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방에 돌아온 날 '샤퐁'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네가 날 이렇게 괴롭히는건 네가 이 나라에선 더 상전이기 때문이구나~ 인정~


아무튼 그 지긋지긋한 고양이놈을 피하려고(고양이는 좋아하지만 샤퐁은 아니란다), 또 그 방의 주거비는 너무 비싸서,(거의 월 100만원에 육박) 나는 이사를 감행한다. 그리고 그때는 나름 파리 생활에 익숙(?)해져있는 상태라서 좀 자신감이 생겼달까. 홈스테이는 파리로 떠나기 전에 교환학생을 갈 대학에서 추천해준 곳이었다. 하지만 파리에 온 이후, 많은 유학생들이 룸 쉐어를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2번째로 선택한 집은, Bastille에 있는 한 아파트의 어떤 방의 2층 침대 2개 중 좌측 아래쪽 침대. 여기는 쉐어해서 쓰는 곳이었기에 월세가 40만원 정도로 저렴했다. 그러나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부엌, 화장실의 수체구멍이 막혀있기는 예사였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불평도 수리도 하지 않았다. 양치하는 시간이 되면 대충 나도 나무젓가락으로 쑤셔보고 적당히 물을 뺀 다음, 침대에 누웠다. 침대만 내 방이니깐~


그 침대는 2개월 단기 임대라서, 나는 세 번째 집으로 이사간다. 세 번째 집은 무려 샹젤리제 거리에 있어서 100만원!정도 하는 아주아주아주 작은 방이었는데, 화장실 변기는 층 사람들과 공용으로 쓰고, 샤워부스 정도만 방 안에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침대 바닥에서 지냈고, 친구는 침대에서 지냈다. 한 3~4평 되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둘이서 지내다보니 답답해서 그 친구와 자주 딴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파리 구경을 나가곤 했다. 그래도 나름 벽 쪽에 바 형태의 테이블이 붙어있어서, 함께 나란히 앉아 시리얼을 타먹거나 빵을 나눠먹었던 기억은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방의 샤워부스 안의 온수통은 너무 작아서, 한 명이 샤워하고 나면 다른 한 명은 찬물로 씻어야 해서 그게 좀 별로였지만. 뭐~ 샹젤리제니까~


그래, 그때의 기억으로 따지만 나는 결코 '공주' 아니다. 그러나  하나 배운  사람에게 공간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아름답고 유서깊은 건물에 반했으면서도, 막상 살아보니 춥고, 방음  되고, 삐걱거리고, 녹물이 나오는, 그런 집들에 질려 나는 파리를  재건축하고 싶단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옥을 밀고 아파트와 빌라가 가득  서울이 혜자로운 면도 분명 있겠구나. 그렇겠지? 그러니 부디 다시   혜자롭기를, 방을 구하는 2020년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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