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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pr 16. 2018

민철이의 아주 특별한 하루

 적막한 버스 안,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년만에 처음 밖으로 나와서 그래. 민철아, 이제 히키생활 청산해야지. 긴장하지마.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내어봐도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되겠다.

 나는 입으로 휴대폰 진동소리를 냈다.

"지이이이이이잉"

사람들은 분주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주의를 돌리니 마음이 좀 차분해졌다. 나는 내리기 전까지 진동소리와 벨소리를 번갈아내며 버스에서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내겐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입으로 어떤 소리든 아주 똑같이 흉내내는 능력이다. 히키코모리가 된 후 우연찮게 내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각종 미디어를 섭렵하며 여러 소리들을 '수집'해가며 그것만 연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참가한 1인 미디어의 시청자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명세로 얼떨결에 방송국에서 섭외 연락까지 받게 되었던 것이다. 

 히키인 나로서는 응당 출연제의를 거절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먼저 방송사에 취직해 나를 배반한 전여친 희경이가 그 프로의 조연출로 있었다.  그녀 앞에서 능력(?)있는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고 오랜 방구석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내가 히키가 된 원인의 팔할은 그때의 그 상처에 있었으니까. 그렇게 내가 탄 버스는 어느덧 방송국에 도착했다.


"리허설 할게요. 일단 출연자 분들 무대로 나와주세요."

 희경이는 어딨는지 보이지 않았다. 무대로 올라간 내게 누군가 마이크를 채워줬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나왔는데도 너무 긴장돼 손에서 땀이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수많은 사람들과 카메라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번엔 기분탓이 아니다.

"자 2번 출연자 김민철 씨. 성대모사의 달인이라고 하시네요? 먼저 본인소개 부탁드릴게요!"

 드디어 내 차례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절정에 이르렀고, 이제 이 상황을 그저 모면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B-1 폭격기 소리가 나간것은.

"두두두둥 둠 둥 쾅~"


 실내에서 폭격기가 횡보하며 폭탄을 떨굴리 없건만, 그 살벌하고 사실적인 폭격기 소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

"폭탄이야!!!" "빨리 나가요. 밀지말고"

 어리둥절해하는 나의 시야에 일순간 희경이가 보였다. 그녀도 공포에 질린 채 인파속에 섞여 밖으로 대피하고 있었다. 나는 간신히 사람들 틈을 비집고 그녀에게 다가가 손목을 잡았다. 2년만의 재회였다.


"희경아, 잠깐만 있어봐. 내 말좀 들어봐."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흠칫 놀랐다. 두려움에 찬 눈빛은 나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폭탄 때문이었을까.

"응? 어 민철아. 오랜만이다. 근데 우리 일단 나가자, 나가서 얘기하자."

그녀는 다급히 그렇게 말했다.

"아니 사실 그 폭탄말야, 그거 내가"

희경은 내 말을 다 듣지도 않은채 내 손을 뿌리치고 황급히 사람들을 따라 나갔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고, 바깥에는 이미 많은 수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도착해있었다.

"저 사람이에요 저 사람."

희경이가 경찰관들에게 나를 지목하고 있었다.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전에 사귀다가 차이고, 앙심을 품었던것 같아요. '사실은 자기가 폭탄을 설치했다'면서 저를 붙잡아두려고 했어요!"

희경이는 상상력이 풍부했다. 어린나이에 PD가 된것도 아마 그 덕이 컸을거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그 상상력은 나를 파렴치한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있었다.


경찰은 내게 달려와 수갑을 채웠다. 거칠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2년만에 용기를 내 외출을 했고, 희경이도 오랜만에 봤고... 생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내 능력을 인정(?)받았는데.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인데. 어디서부터 항변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너무 막막해 머리가 새하얘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나는 진짜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이이이이이잉" "띠링띵띵띠리링띵띵"

입으로 벨소리를 내봤지만, 이번엔 아무 효과도 없었다. 모두가 여전히 경멸스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입으로낸 아주 사실적인 벨소리와 진동소리들은 사이렌 소리와 맞물려 주인없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written by 공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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