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고
(토이스토리 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가 소설 주인공이라면 어떤 캐릭터일까?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 내면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프로그램이란 인물 자신도 잘 모르면서 하게 되는 사고나 습관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만드는 인물 '성격 창조 워크숍'을 소개하며, 나아가 자신의 습관과 근원을 성찰한다. 어릴 때 전학을 많이 다녔던 경험이 쌓여서, 낯선 세계에서 받아들여질 때 안정감을 얻는 패턴이 만들어졌다고 다음처럼 말한다.
만약 내가 영화나 연극의 등장인물이고, 인물이 낯선 도시의 호텔에 도착하는 경험을 주기적으로 필요로 한다면, 배역을 맡은 배우는 아마도 작가나 연출자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 “인물 내면의 어떤 프로그램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 “삶의 안정감이란 낯선 곳에서 거부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고 믿는 것. 보통은 한 곳에 정착하며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가야만 안정감이 생긴다고 믿지만 이 인물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죠. 그냥 여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행에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삶의 생생한 안정감입니다.” /p.60
최근에 개봉한 영화 <토이스토리 4>에서 주인공 우디의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다. 우디는 '쓸모' 있는 장난감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더 이상 우디를 갖고 놀지 않는 주인 보니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원픽 장난감 포키를 쓰레기통에서, 골동품점에서 끊임없이 구출한다. 자신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재활용품 장난감 포키를 데려간다고 고집부리는 우디를 보고, 친구들은 네가 쓸모없다고 느껴질까 봐 그러는 거잖아 라고 일침을 가한다. 주인에게 기쁨을 주는 장난감일 때 가치 있다고 믿는 우디의 프로그램 때문이다.
우디에게 감정 이입이 되었던 건 내 프로그램과 닮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도움이 될 때 쓸모 있다고 느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은 건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서이다. 아파서 먼저 세상을 떠난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때 기억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지금 나는 이렇게 봉사하고 있으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은 게 아닐까. 과거를 투영하지 않고 현재에서 타인을 타인 그 자체로 대하고 싶다.
우디는 주인 없이 자유롭게 사는 장난감 보를 만나고 가치관을 전환한다. 주인 보니가 아닌 연인 보와 함께 독립적으로 살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 우디와 버즈처럼 ’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나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