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까뮈가 1947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이다. 전염병 페스트가 알제리 해안에 있는 오랑이라는 평범한 도시에 창궐한다. 사람들은 격리되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죽음에 대응한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연대기를 기록한다. 파늘로 신부는 페스트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배우자고 교회 사람들에게 강론한다. 시청 직원 그랑은 성실하게 직분을 다한다. 세상을 이해하자는 윤리관을 가진 타루는 보건대를 조직한다.
'인간이 되기'에 관심 있다고 말하는 그는 재앙의 편에 서기를 거부하고 희생자들 편에 서서 공감하겠다고, 그렇게 평화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모두 자신 속에 페스트를 갖고 있다는 타루 대사가 인상 깊었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p.295
페스트란 무엇일까. 전쟁, 재앙, 질병, 절망, 불행, 운명, 의지의 부재, 부도덕... 누구나 갖고 있다는 페스트가 나에게도 드러난 적 있다. 방심한 사이에 이미 도착한 가족의 죽음. 내 무관심에 절망한 날들. 타루 말처럼 '의지'를 갖고 주변에 관심을 가져야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남 일이라고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고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야 된다는 그가 반갑다. 최은영 작가님이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 말했듯이 의도치 않게 해를 끼치며 살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대사는 저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의사 리외는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걸렸던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증언을 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남겨 놓기 위해, 그리고 재앙 중에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p.360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리외는 <시지프 신화>처럼 인간이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절망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쓰고, 의지를 갖고 스스로 양심에 떳떳한 행동하기. 불행에 끝없이 패배할 지라도 일시적인 승리들이 있으니까 우리는 페스트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