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인터뷰. 마지막 질문 (9/9)
오늘의 질문 9.
애도하는 것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1. 기억하기
사랑하는 동생을 기억하는 시간이에요. 살아있는 사람이 고인을 기억하면 그가 존재한다는 영화 <코코>처럼, 잊지 않고 가끔씩 계속 떠올리고 싶어요.
2. 내 마음과 만나기
나라는 존재와 만나려는 시도예요.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고, 이를 통해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정혜신 선생님 말처럼요. 만약 그때 이랬다면 살았을까 하는 후회나 자책, 미안함만 몇 년째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다른 감정은 외면해왔어요. 이번에 애도 작업을 같이 하면서 사실 동생이 원망스럽고 밉다고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고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는데 나는 못 하겠어요. 그렇게 가버린 동생이 이해 안 되고 바보 같아요. 계속 아파서 신경 쓰였던 동생이 더 이상 없어서 홀가분한 마음도 있고요. 솔직하지만 못된 마음이라서 불편했는데 이제는 이 또한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3. 알아차림
동생의 죽음은 나에게 큰 영향이 있는데 어떤 걸까,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알아차리고 싶어요. 유가족 모임에서 들었는데 심리적으로 미해결된 과제가 있으면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한대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걸 발견했어요. 이 사람이 죽으면 안 되니까 곁에 있고 싶고 살려야 될 것 같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끝없이 듣고 격려하면서 어서 괜찮아지길 바라요. 나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 못 하니까 괴롭고 더 예민하게 반응해요. 의사도 신도 아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그 사람을 바꿀 권한과 책임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이 요동쳐요. 동생을 투영해서 봤고, 전이되었구나 싶어요. 관점을 바꿔서 다르게 해석한다면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아요. 방 청소하듯이 내면을 살피고 정리하고 싶어요.
4. 받아들임
오랜만에 동생의 흔적을 보고 괴리감을 느꼈어요. 아름다운 추억과 이상적인 이미지만 남겼는데 그렇지 않은 면들이 나와서요. 참 예쁘고 좋은 사람이었지,라고 매끄럽게 미화하고 서둘러 포장했구나 싶었어요. 나와 동생의 못난 모습, 뾰족하고 어두운 그림자까지 입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동생도 나도 완벽하지 않으니까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부족했지만 나름 그때의 최선이었겠다고.
여전히 죄책감이 가장 큰데 이 감정을 없애고 싶은 건 아니에요. 없앨 수도 없고 아마 평생 느끼겠죠. 충분히 머무르고 알아주고 싶어요. 그만큼 잘 하고 싶었구나 사랑하는구나 하고요. 자책에 빠져있기보다는, 이 에너지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주변에 관심 갖고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슬프다고 계속 얘기해도 괜찮구나,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