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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Sep 14. 2023

학교는 선생님의 '직장'일뿐인가요?

체육대회의 단상

오늘 초등학생인 막내아들의 체육대회가 열렸다.

비록 1, 2학년만 함께 하는 소규모 행사지만, 팬데믹 이후에 열리는 첫 공개행사이니 만큼 학부모들이 관심이 지대하다. 

요즘 내내 날씨가 좋다가 하필 오늘 비가 내리고 있다.

새벽부터 반톡방의 알람이 울렸다.

비가 오는데 체육대회가 열리느냐 마냐에 관한 내용이다. 다행히 강당에서 진행해도 될만한 프로그램들 이어서 행사는 연기되지 않았다.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니,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강당은 엄마, 아빠들 가득 찼다.

대체 얼마만인가. 학교체육대회.


전문 레크리에이션 업체가 진행을 맡았다.

사전에 공지된 순서에 따라 경기가 진행되고, 저학년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응원과 함성으로 강당 안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지금 고등학생, 중학생인 딸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과 비교해 보면 학생수와 행사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지만, 요즘 같은 동네잔치부재의 시대에 이 정도 인원이면 가히 흥행성공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선생님들의 표정이 즐겁지가 않다.

긴장으로 굳어진 채 웃음이 전혀 없는 얼굴들이다.     

이유는 아이들이 꼬리잡기 게임을 할 때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기다란 스펀지 막대를 바지춤에 꽂아 꼬리라 하고, 상대방의 꼬리를 어느 팀이 더 많이 빼앗아 오느냐를 보는 경기이다. 과열된 승부욕에 넘어지는 아이들이 속출했고, 꼬리를 빼앗긴 아이 중엔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앗, 저 아이가 일부러 발은 건 것은 아닌데, 다친 아이 부모님이 문제 삼으면 어떡하지?’

‘울음을 터뜨린 아이 부모가 아동의 신체적 차이를 배려하지 못한 게임을 선정했다고 민원을 제기하면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들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아마도 요즘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학부모들의 악성민원에 대한 갖가지 사례들을 접한 탓이다.

이제 학부모 학교사이 일들은 무리 괴상한 것을 상상해도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이리 즐거운 체육대회는 과연 선생님들에게도 그러할까?

오늘의 체육대회는 마치 수술실에 CCTV를 처음 달게 된 의사의 첫 집도일 정도쯤 되지 않을까?     


오래전 나는 내 책의 한 챕터에 ”딸아, 스승을 섬겨라. “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벌써 8년 전이다.

 당시부터 이미 나는 ”선생님“과 ”학교“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다.


"OO아, 혹시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 알아?"

언젠가 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노래를 알고 있다며 흥얼거리는 것을 들어보니, 가사는 얼추 맞는데 멜로디가 <고향의 봄>이다. 그 마저도 가사는 첫 소절 밖에 기억을 못 한다.

막내아들에게 물었다.

"너흰 스승의 날 때 학교에서 뭐 했어?"

"그날 태권도 학원 안 갔잖아~"


대충 들어보니, 스승에게 감사를 표하라고 나라에서 정한 날인데 학교에서 특별히 마련된 행사는 없는 듯하다.

당일에 감사편지 한 장 써본 적이 없다한다.

과거의 촌지, 현재의 <불법찬조금>을 철저히 막고자 하는 취지로 선생님들에게 개별적으로는 껌 한 개 드리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요즘이다.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형평성 이유로 특정학생에게 눈 길 한번 더 주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과거 배움이 귀했던 시대에 절대 지식을 가진 선생님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보다 더 나은 가르침을 내 자식에게 주실 감사한 존재.

그 가르침을 "은혜"라고 족히 부를 만했다.

하지만 지금의 학부모들은 다르다.

배울 만큼 배운 그들은 선생들의 지식이 대단치 않고, 사교육이 있으니 학교라는 교육현장이 아쉽지 않다.

초등시절에 개근상을 포기하고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는 이유는 출결이 성적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고, 대학을 가기 위해 중고등학교를 자퇴하면 좀 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용기가 부러운 마음까지 든다.


선생님들에게 우리가 받는 건
교육밖에 없는데
그것도 학원으로 대체가 되잖아요.
근데 왜 우리가 수업시간에
떠들면 안 되는 거죠?


우린 언제부터 학교를 "선생님의 직장"정도로 생각하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가 잘못한 것일까.

선생님들을 우습게 보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탓할 자격이 있을까.


오늘도 또 다른 선생님들의 비보가 들려오는데, 여전히 학교는 학부모들이 부담스럽고, 학부모들은 학교가 끝끝내 못 미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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