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의 학교기숙사 공사가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수업은 모두 원격으로 전환되었다. 지난 펜데믹때 원격수업의 경험이 있어서 큰 혼란없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아이학교 특성상 팀작업과 실습이 많은데 그 부분을 충족할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전국구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고등학교이기에 학생들의 거주지가 가까이는 서울, 멀게는 거제도까지 아우르므로 그 결정은 불가피했다.
주말을 앞두고 아이가 물어왔다. "엄마, OOO이랑 토요일에 여의도에 있는 캐릭터 팝업스토어에 가고 싶은데 우리집에서 하룻밤 자고 같이 가도 되요?" 친구는 대전에서 올라온다고 한다. 초등학교때부터 우리집에서 곧잘 파자마파티를 열었기에, 나는 그것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아이가 셋이나 있는 집,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도 아니고, 다 큰아이 한 명이 더 늘어나는 것은 티도 안나는 살림이다.
나는 우리동네가 아닌 먼 지방까지 아이를 재우러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이 먹을 것들과 잠자리에 대한 체크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다른 가정에서 재우는 것에 불안감을 크다. 하지만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밤이 새도록 놀고 싶어하고, 그것은 학원시간에 쫓겨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적어지는 청소년이 되니 가엾은 마음이 들어 말릴수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이왕 함께 재울거면 우리집에서 재우자!"가 된 것이다. 바로 코닿을 거리의 친구집에 아이를 보내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인지라,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집에 보내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이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각오를 다지지만 염려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럴때마다 나는 내 아이를 찾아온 친구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내 아이가 다른 가정을 방문했을때,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그 부모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이다. 그 댁의 아이와 차별없이 먹을 것을 대접받고, 지내는 동안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으며, 다시 무사히 우리집으로 되돌아오는 순간까지 아이의 안부를 전달받았으면 하는 마음말이다.
딸아이를 시켜 우리 집주소를 친구와 친구부모님께 알려놓으라고 한 후, 새 침구를 꺼내고 베겟잎을 갈기 시작했다. 호박전을 부쳐서 식힌 후 비닐랩에 씌워놓고, 3절 나눔반찬통에 김치류를 적당히 덜어 담아놓은 후, 멜론도 먹기좋게 깍둑썰어 한 가득 담았다. 동네식당에서 포장해 온 갈비탕도 냄비에 덜어 한소끔 끓여놓은 후 동서울고속터미널로 출발했다. 친구는 예상시간보다 30분 가량 늦어졌지만 무사히 도착했고, 부모님께 먼저 연락드리기를 당부한 후에야 내 마음도 드디어 놓였다.
내가 아이의 친구들에게 쏟는 정성을 우리아이도 집 밖에서 받기를 몹시 소망한다. 특히 요즘같이 가슴서늘한 소식이 들려오는 사회에서, 내가 다른 아이들을 지키는 마음이 돌고돌아 우리아이를 지켜주는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