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엄마인 나도 기대가 컸고,또 그만큼 실망도 컸다.
그 해 겨울방학은 그렇게 서로의 속상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한 집에 살지만 최대한 접점을 만들지 않은 채 보냈다.
사주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6학년 때 첫 스마트폰을 손에 쥔 딸은 늦게 배운 도둑질처럼 웹소설과 웹툰을 하루종일 보면서 지냈다.
그것이 내심 못마땅하였지만,
마치 아이의 불합격의 원인이 충분한 지원을 못해준 엄마의 책임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에 싫은 소리를 여러 번 삼키곤 했다.
집 근처의 일반 중학교에 진학한 딸이 어느 날, 가정통신문 한 장을 내밀었다.
학령전환기 청소년(초1, 초4, 중1, 고1)을 대상으로 K척도(청소년인터넷중독 자가진단척도), S척도(청소년 스마트폰중독 자가진단척도)를 활용한 인터넷, 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조사를 시행하는데, 그것에 대한 결과지로 "위험"군에 속하는 귀하의 자녀를 위해 가족상담치유서비스를 제공하니 원하면 신청하라는 안내문이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아이는 엄마가 대체 왜 화를 내는지 제대로 이해를 하지도 못한 듯했고,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뻔뻔함으로 받아들여져 나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동안 삼키고 삼켰던 모진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난 후,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그제야 상황파악에 나섰다.
먼저 담임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시행한 조사에 대해 물었더니, 여성가족부에서 시행하는 조사라 설문의 내용이나 판정기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는 답변이셨다. 난 동네의 선배맘에게 전화를 걸어 비슷한 경험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큰 딸보다 한 학년 위의 딸을 가진 그녀는 대뜸,
"야! OO이 착하네~~!! 그걸 솔직하게 다 체크했대?ㅎㅎㅎㅎㅎㅎ"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그거~스마트폰 하고 나면 자꾸 또 하고 싶나요,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 하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드나요...
뭐, 그런 종류 질문들이야.
진짜 약은 애들은 그거 솔직하게 체크도 안 한다고.
OO이 아직 순진하네?"
순간 납득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평소 스마트폰 사용이 과하다 여기던 차에 한 소리 잘하였다 여기며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입 주변이 빨갛게 부어있어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딸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어제 심하게 화를 낸 것이 내심 미안해서 특별히 큰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저녁 메뉴를 준비한 후 둘러앉았다.
아이 입가의 상처는 어느새 검푸른 멍이 되어 있었고, 아이의 칠칠맞음을 장난스레 타박하며 조심하라고 하는데 아이에게서 뜻밖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응 엄마, 사실 이거 어제 내가 나 때린 거야.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순간 세상공기가 없어진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아이는 웃으며 밥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숟가락을 들 힘이 쭉 빠져나갔다.
"어제 엄마가 알아보니 그 검사만으로 OO 이를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겠더라.
갑자기 그렇게 크게 화내서 미안했어. 그래도 요즘 웹툰, 웹소설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으니까 적당히 보도록 하자."
"그리고 OO아, 어떻게 엄마도 손 대본적이 없는 너를,
네가 아프게 할 수가 있니?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마. 알겠지? 진짜 안돼 그건.."
먹은 것을 대충 정리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눈물이 솟구쳐서 계단을 끝까지 내려갈 수가 없었다.
... 내 아이의 자해..
나는 왜 내 아이를 먼저 믿고, 전후사정을 살피지 못했을까.
나는 대체 그 아이가 무엇이 부족해서 스스로를 미워하고 해치게 만든 것일까.
방 안에서 혼자 자기가 자신을 때리는 것으로 화를 냈을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웹툰과 웹소설에 빠져서 내 속을 끓이던 딸은 결국 학업과 그림 모두 상위권 아이들이 진학한다는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애니과에 진학하였다.
내 아이의 자해사건 이후,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늠할 순 없지만
학교내외서 아이들을 상대로 진행하는 모든 진단검사가 "내아이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순 없다는 것이다.
내가 보는 나의 아이가 정확하다.
그렇기에 나의 눈을 갈고닦아야 한다. 엄마의 눈 말이다.
무조건 "내 아이는 다르다거나, 모든 나쁜 것에서 벗어나 있다"거나 하며 감싸는 것이 아니라,
옳고 바른 것에 대한 기준을 엄마인 내가 확고히 해야 세상의 다른 잣대속에서 아이가 당황할 때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세상과 똑같은 눈으로 내 딸을 바라보았고, 믿지 않았고,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를 다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