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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01. 2023

나의 길티 플레저

이제 맛있는 건 몰래 먹는다.

Daum ‘미즈넷’에 자주 들락거렸었다. 거기엔 대한민국의 몹쓸 남자들이 모두 모여있어서 내 남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받는 곳이었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남의 불행을 몰래 즐기는 내 모습은 끔찍했지만,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미즈넷은 나의 길티 플레저였다.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일수록 조회 수가 높아서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행을 지어서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그들 역시 불행해 보였고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악플을 달아주었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쏟아내는 사람들, 불행을 지어내는 사람들, 촌철살인 같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며 즐기는 나 같은 사람들. 그곳은 한마디로 불행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집합소 같았다.  

    

나는 주로 남편이나 시가의 이야기를 골라서 읽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추임새처럼 내뱉고 사이다 같은 댓글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는 절대 글쓴이처럼 살지 않겠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 얼마나 야무진 다짐이었던가.     


더 이상 플레저 하지 않고 길티만 남았을 때 나는 미즈넷을 끊었다.      


요즘 나의 길티 플레저는 엄마가 준 채끝 스테이크를 남편 몰래 구워 먹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냉동실 깊숙이 갈치 더미가 있는 곳에 숨겨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스럽게 구워 먹고 있다. 정말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할 정도로 치사스럽다.


오늘도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제는 남편이라 칭하기도 마땅찮은 그에게 아직도 죄책감을 느끼는 나. 몰래 먹은 걸 들키지 않으려 환기시키는 나.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가 않다. 나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창문을 닫고 설거지를 했다.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언제가 그가 생각났고 조금이라도 먹이려고 그의 몫을 따로 챙겨 놓았는데 이제는 몰래 먹는다. 우리는 가끔 상대방이 죽으면 화장실에서 웃는 거 아니냐며 서로를 찔러보았는데 비로소 내가 그 지경에 도달한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화요일마다 열리는 아파트 장터에서 단팥 도넛 4개를 샀다. 단팥 도넛은 숨기지 않고 주방에 두었다. 비싼 고기는 혼자 먹어도 4개에 3,000 원하는 도넛 정도는 베풀 아량이 남아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아량도 너무 치사스러워서 나는 도넛 4개를 다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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