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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27. 2023

여전히 애정을 갈구한다.

그런 내가 한심하다.

생생한 꿈은 주로 선잠을 자는 새벽녘에 꾼다. 잠에서 깨고 나면 나는 비밀일기를 들켜버린 사람의 심정이 된다. 꿈은 내가 나에게 숨기려고 했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일요일 새벽에 꾼 꿈은 이러했다. 오래전에 좋아했던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우리는 서로의 허벅지 바깥쪽이 닿아있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피하지 않았다. 내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따뜻한 체온. 이제는 낯설어진 익숙한 촉감.         


꿈속에서 나는 ‘아.. 그래. 이 사람도 날 좋아했었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그 왈캉한 감정은 이런 것이었지 하면서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자주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데, 어렵게 찾아낸 화장실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더러워서 차마 팬티를 내리지 못한다. 운 좋게 깨끗한 화장실을 발견하는 날도 있지만, 그때는 그렇게 마렵던 소변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나오지 않는다.           


끙끙대다 꿈에서 깨면 현실의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지만 밤새도록 참았던 상태였다는 걸 안다. 그냥 침대에 싸버리지 않은 40살 넘은 자신을 그렇게 대견해하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꿈은 언제나 현실의 연장선에 있다. 현실의 내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꿈속의 나는 화장실을 찾아 헤매고, 현실의 내가 애정을 갈구하면 꿈속의 나도 애정을 주는 남자를 만들어낸다.   

  

꿈속에서도 나는 오감을 느끼고 내 생각으로 행복과 불행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가끔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 말고 현실과 다른 게 뭘까.  잠에서 깨면 그것이 꿈이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현실을 자각할 순 없을까.      


나는 잠에서 깬 뒤 멍하니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던 그 남자는 분명 남편이 아니었지만, 그건 남편일지도 모른다. 내가 애정 그 자체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남편의 사랑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애정에 목말라 있고 그것을 갈구한다는 것은 확실했다. 혼자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충만하고도 포근한 안정감. 나는 그것을 원한다. 그것이 사라진 현재와 그로 인한 상실감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힘들다. 그리고 그런 내가 한심하다.      


나는 어째서 상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직도 사랑 따위를 갈구하는 것일까. 아무리 20년의 세월이라 하더라고 이 정도의 타격감이라면 사람의 맘이 완전히 돌아서는 것이 맞지 않나.      


그는 내가 원한 이혼조건을 듣고 그렇게까지 해서 이혼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3년 전처럼 간절하게 이혼을 원한 건 아니었다고. 이런 가벼운 맘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을 내뱉은 사람에게서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 건가.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을 원하는 건지 현실은 매번 이렇게 일러줘야 한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이제는 현재만을 봐야 할 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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