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Mar 14. 2023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

스스로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고작 65ml 밖에 되지 않는 요구르트를 1개 이상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이였다. 2개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요구르트를 유난히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1개 이상 먹으면 안 된다는 핀잔을 들은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정해놓은 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구르트는 1인당 1개라는 암묵적인 룰에 압도당한 것 같기도 하다. 어딜 가도 식후나 빵이나 과자 따위와 곁들어서 나오는 요구르트를 1개 이상 주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왜 하나만 줄까?’라는 의문을 품지 못하는 사람. 더 먹고 싶어도 더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였다.      


동네 슈퍼에서 오랜만에 그 ‘요구르트’를 보았다. 정작 내 돈으론 한 번도 사 먹지 않은 그것을 나는 덥석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요구르트 4개를 유리컵에 콸콸 쏟아부어서 탐욕스럽게 들이켰다. 이것이 최근의 행동 중 가장 큰 일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토록 소심한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요구르트를 한꺼번에 4개씩 마시는 것과는 비교 안될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유입 키워드에 ‘shinpd72’ 라던지 ‘윤비 브런치’ 같은 것을 보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나를 찾았다는 뜻인데, 도대체 누가 의도적으로 찾느냔 말이다.(나를 아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들켰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들키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는 건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터 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들키고도 싶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토해내고 내가 토해낸 것들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에게.    

  

그저 나를 아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몇 시간, 아니 몇 분간의 수다거리에 불가해지고 말 나의 불행을 나는 여전히 측은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나의 일상이 불행이라는 단어에 적합하지 않아서 심지어 객쩍음을 느끼면서도 그렇다.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예전의 나로 존재하고 싶다. 여전히 세상이 정해놓은 암묵적인 룰에 갇혀있다. 요구르트는 한 개만 먹어야 한다고 정해놨듯이 지금의 내 삶은 옳지 못한 것이고 세상이 정해놓은 평범한 부부로 살아야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믿지는 않는다. 오직 나를 믿을 뿐이다. 내가 틀에서 벗어난 것은 이 정도인 듯하다.                    



이전 06화 여전히 애정을 갈구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