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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Mar 22. 2023

경험이라는 힘

나를 울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내 방이 된 침실에 있으면 때때로 고요하다 못해 공기마저 멈춰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방 한 칸이 뚝 떨어져 나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이 적막함이 싫지만은 않다. 좋고 싫음이 분명했던 나는 이제 그 무엇도 단정 지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거의 모든 것이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다.      


나는 인간 로봇이라는 평가를 받는 ‘INTJ’다.(MBTI를 믿는 편) 유년 시절부터 엄마에게 우리 딸들은(그렇다. 본인의 언니도 INTJ) 어쩜 눈물 한 방울 없느냐는 핀잔을 들으며 자랐다.


남들이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울 때 저런 것을 보고 운다고!? 나는 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 드라마만 보면 운다.

      

퇴사 후 1년이 지나도록 자의로는 tv를 켜지 않았던 나는 이제 드라마를 배경처럼 깔아놓고 지낸다.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예전에 본 것들인데 무심코 넘겼던 대사 하나하나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나는 나이 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의 혼란을 이겨내고 싶었다.’ (디어 마이 프렌즈 中에서)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어서 다른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예전에 회사 선배가 ‘너는 그냥 아들 같아.’라고 말했을 때도 이렇게 여자처럼 생겼는데 뭐라는 거야!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경험은 감정을 풍부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것이 버거워서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마워하고 있다. 온갖 감정들로 인해 충만해진 기분은 예전에는 알 수 없던 것이었다. 그것은 나를 울 수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행복을 느끼더라도 슬픔이나 공허함이 옆에 붙어있다. 마찬가지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희열과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좋을 때 좋기만 하고 싫을 때 싫기만 했던, 다시 만나지 못할 내가 그립기도 하다.     


여전히 딱 떨어지는 것들의 명확함과 단순함을 사랑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감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쯤 되니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경험이라는 것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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