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Apr 27. 2023

죽고 싶지 않아서 다시 쓴다.

9개월이 지났다.

심해에 놓인 사다리.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 이미 숨은 바닥난 패닉 상태지만 죽지 않으려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설 때쯤 사다리는 다시 시커먼 아래로 떨어지고 나는 숨을 참고 한 발. 한 발 또 내딛다가 숨이 막혀 잠에서 깬다.  

    

며칠째 잠만 잤다. 침대 속으로 기어들어 몸을 둥글게 말고 나는 숨어들었다. 9개월 동안의 노력과 평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졌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익숙한 통증.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해야 할까.  


상처받지 않으려 숨었지만 잠에서 깨면 여전한 현실이 나를 잡아 끌어내렸다. 그래서 또 잤다.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온다.      


얼마 전 친구의 직장동료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회사를 그만두면 되지 왜 자살하냐고 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나란 사람은 얼마나 웃기는지. 그(그녀)는 회사를 그만둔다 해도 삶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둔 뒤의 삶 역시 한치도 나아지질 않을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 거라는 절망감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겠지.     


결심하는 마음과 단행하는 마음 사이에서 9개월째 헤매고 있다. 결심하는 마음이 흔들리면 절망스럽게 답답하고 단행하는 마음으로 기울어지면 절망스럽게 두렵다. 어디에 있든 고통스러운 것은 같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서 기어 나와 다시 쓴다.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나. 나는 이 감정을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날 부정하려 애썼다. 그러면 안 된다고, 자기 연민에 빠져도 안되고, 빨리 떨쳐내야 한다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지? 내 마음을 그대로 놓아두면 왜 안 되지?  

   

고통스러운 나를 바라본다. 그 누구도 이혼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다들 이대로 살아가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이혼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혼을 해야 되기 때문에 결심한 것이 아닐까. 이혼조차 남의 눈치를 보는 내가 질렸다.

    

사람들은 모두 똑 부러지는 이혼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내게 남은 건 미련인가 집착인가 사랑인가 두려움인가 불안함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인가.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남아있는 상태임에도 이혼을 하는 것일까.      


나 같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나는 그것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나조차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입사한 순간부터 퇴사 결심을 하고 18년 뒤에야 퇴사를 한 사람. 무엇이든 한 번 맘을 주면 쉽게 놓지 못하고 미련하게 견디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낸 사람. 나는 잘나진 못해도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의심하고 싶지가 않다.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살아가길 바라므로, 살고 싶으므로, 내 마음만 보기로 했다. 어떻게 살지는 내가 결정하자. 설령 그 선택이 모두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라 해도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도 된다.


       

이전 09화 건널목 앞에서 그와 마주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