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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Jan 25. 2023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는 돌연 이혼을 거부하고 회피하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힘들지 않았다. 남자들이 시어머니와 내가 장만한 음식 앞에서 절을 올리며 모든 도리를 다한 듯이 당당했을 때 나는 부정한 존재가 된 것처럼 부엌 한 귀퉁이에 멀찍이 서 있었다.  

        

그저 오랜 관습을 믿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인력과 금전을 제공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고 그들은 그걸 며느리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나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할 도리란 것을 하자고 마음을 비웠다.     


반면 남편은 명절만 되면 예민해져서 내 표정, 숨결까지 트집을 잡았다. 그의 부모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았지만 그는 내게 도리 이상의 것을 바랐다.      

  

6개월 전 시어머니가 코로나에 걸렸다. 시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3~4일 정도 머물겠다는 연락이 왔고 남편은 그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공간 분리가 되는 넓은 집에 살고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르면서 자식 집에 온다는 사실이 이해되진 않았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내 표정을 트집 잡으며 내게 정이 떨어진다고 울분을 토했다. 나는 네가 감정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있듯이 나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통보한 것에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그는 아연실색하며 그런 일에 동의를 구하라는 날 비정상이라 말했고 이것을 계기로 이혼을 요구했다.    

      

그가 내게 무엇을 원했는지 안다. 지금껏 그의 부모가 내게 어떻게 했는지 알면서도 내가 방긋방긋 웃기를 원했다. 그것은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내가 그 기대와 믿음을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불만을 드러냈었다.  

   

아무리 그의 잘못이라도 미친 듯이 화를 낸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말로 상처를 주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상대방의 잘못 보다 결코 더 가볍지 않은 잘못이다. 그래서 항상 나를 질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었다.          


말로 인한 그의 상처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가 무슨 짓을 해도 화를 참았고 속은 곪아갔다. 그는 이런 나를 모른 척했고 나의 기대는 포기가 되어가고 있던 차였다.       

    

그는 결혼생활 내도록 일주일에 3~5번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왔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술 마시는 건 상관없으니 그저 늦을 것 같으면 전화만 해달라 부탁했고 그는 끝내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보다 내가 매번 해장국을 안 끓여준 것이 큰 잘못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죽어도 그가 기대하는 사람이 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제는 그가 기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런 나를 책망하기도 싫었다.          


내가 이혼을 수락하자 그는 돌연 이혼을 거부하고 회피하고 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미쳐 날뛰는 내 마음을 잡으려 애썼다. 가족과 친구들 없이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분노를 내뱉는 것이 내게 상처가 되는 것을 알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화가 나지도 않았다. 지난 20년의 세월을 보상받아야 하는 피해자인 척 구는 것도 그만두었다.     


우리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못했다. 나는 선인장인데 그는 내가 장미꽃을 피우길 바랐고 그는 벚나무인데 나는 그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가 소나무가 되지 못한다고 비난받을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나는 장미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죄책감 따위 가지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뾰족한 가시를 달고서 나는 내 인생을 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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