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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Sep 28. 2022

무신론자가 절에 가다.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없었다.

엄마가 악착같이 먹였던 아침밥을 결혼하면서부터 끊었다. 그러니까 아침밥을 안 먹은 지 13년이 되었는데 지난주부터 악착같이 아침밥을 챙겨 먹고 있다.     


아침밥을 욱여넣고 집을 나와 등산로를 걷는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기 때문에 아침 운동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나를 제치고 저만치 앞서 걸어갈 정도다. 아랑곳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수행하듯 천천히 언덕길을 올랐다.           


체력이 좋지 않아 언덕길에 대한 두려움이 큰데, 그런 내가 그곳에 가기 위해 스스로 등산로를 걷는 선택을 했다. 천천히 오르는데도 땀이 목덜미를 따라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숨이 차지는 않는다. 가슴이 터질 것 같지도 않다. 두려움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이 정도 언덕길도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내가 좀 미웠다. 그래서 그가 이 등산로를 산책길로 정할 때면 이번에도 제대로 오르지 못할 나를 미리 걱정하고 탓하기 바빴다. 처음에 그는 나를 배려해 속도를 맞춰 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앞서서 혼자 걸었다. 그리고 헉헉 거리며 올라오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짜증이 난다는 듯 멀리서 지켜보곤 했다.    

       

곧바로 다음 코스로 가야지 완주할 수 있다며 숨을 돌릴 시간도 주지 않았다. 숨이 차올라 심장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든 완주를 하긴 했었다. 그런데 내 속도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지 않아도 이 언덕길을 오를 수가 있구나. 나는 벤치에 앉아서 쉴 수도 있고 주위 풍경들도 관찰하면서 힘들지 않게 이 언덕길을 오를 수가 있는 거였다.         

 

최종 목적지는 절이었다. 혼자서 절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무신론자라고 믿었지만 나는 단지 평탄한 삶을 살았을 뿐이라는 걸 알았다. 그제야 절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주 엄마에게서 절하는 법을 배웠던지라 법당에 들어가서 어설프게 절 3번을 하고 합장을 했다. 절을 하는 동작 중 엎드리는 동작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침 일찍 할머니 보살들 옆에서 젊은 여자가 절하며 우는 풍경이란! 나는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을까.    

       

법당 밖을 나와 돌계단에 앉아서 스님의 염불 소리와 목탁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미세한 온기를 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금목서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온다.      


어제 나의 말을 고스란히 들어주고 있는 친구들이 화를 냈었다. 포인트는 달랐지만, 맥락은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는데 그건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나를 돌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왜 너는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냐고 내게 되물었다.      


당혹스럽고 아팠다. 나보다 그 관계에 집착하는 것을 들켰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없었다. 관계는 서로를 맞춰가며 유지가 되는 것이 보통인데 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나를 없애고 맞춰주는 것을 택했다. 그러면 관계가 개선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새 상대방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자신은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된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선 나는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자존감마저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상대방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것인가? 그걸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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