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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Sep 19. 2022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온다. 그렇게 두 달, 일 년, 이 년을 보내고 나면 지금의 마음 또한 당연하다는 듯 떠나보낼 수 있을까.         

  

몰려드는 분노, 자책, 불안, 미련의 감정 중에서 제일 아닌 척했던 미련의 감정이 가장 큰 것을 알았다. 그 감정이 제일 싫었으므로 인정하지 않으려 부정하고 회피했다.      


본인의 일은, 특히 고통이 따르는 일은 현실 직시가 어렵다. 나는 현실에 몇 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공상의 세계를 떠다니다가 머리채를 붙들려 다시 여기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사소한 모든 소리에 상처를 받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도, 술에 취한 채 흥얼거리는 그의 콧노래 소리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달그닥거리며 영양제를 챙겨 먹는 소리에도. 나는 당장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생채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짓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이러는 내가 싫다. 그렇게 감정은 자책으로 옮겨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지영)에서 앤서니 드멜로라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똥통에 빠져 있었어요. 그들은 목까지 똥물에 잠긴 채 겨우 숨을 몰아쉬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현자가 그들에게 물었어요.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소?’ 그러자 그들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선생님, 저기 저 애가 자꾸 뛰면서 똥물을 튀겨요. 그때마다 출렁거리는 똥물이 우리의 코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겁니다. 저기서 나대는 재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해주세요.'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대답하죠. 네! 물론이죠. 그러면 제가 다시 말합니다. 거짓말 마세요. 여러분은 절대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냥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에요.’          


'살고 싶지도 않고 죽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지금과 같은 행복과 불행이 있을 뻔한 내 인생이 기대되지 않았고 당장 죽어도 아쉬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감정을 매번 ‘팔자 좋은 무기력’이라 판단하고 덮어두었다.     

 

가끔 산책을 하고 가끔 저녁을 먹는 관계. 그것을 빼면 아무것도 함께 하지 않는 관계.     


애써 괜찮다고 외면하고 덮어버렸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행복은 이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무기력함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 외로움은 그와 함께 사는 한 계속되리라는 것도. 나는 그저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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