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Sep 06. 2022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다.

2주가 지났다.

퇴사 후 1년이 지났다. 어쩌면 지난 1년은 내 인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평온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맘에 드는 우리의 집, 계좌에 있는 적지 않은 현금, 처음 가져본 외제차, 든든한 남편이라는 존재. 결혼생활 13년 만에 나는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을 거의 다 이루었다고 믿었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1년의 휴식기를 보내고 나서 하고 싶었던 일을 차근차근 시작하면 나머지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퇴사 1주년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밤,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다.     


2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있는 힘을 짜내어 하루 한 번의 식사를 하고 하루 한 번의 샤워를 했다. 나머지의 시간엔 끝도 없는 생각의 궤도 위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실제로 가슴이 아픈 현상을 경험하며 이 와중에 총 맞은 것처럼 이라는 가사를 떠올린 자신이 어이없어 피식거리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2주 전보다는 양호하다. 그렇다고 믿고 싶은 상태다. 현실을 회피해서 공상의 세계로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아는 상태.       

    

폭풍전야. 집 안이 습기를 머금어 온통 축축했다. 방파제 위로 부서지는 바다의 포말을 보니 태풍이 오긴 오는구나 싶었다. 부서지는 파도 위에 서 있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태풍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생각보다 빨리 사라졌다. 회색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 이내 햇빛이 쏟아졌다. 거짓말 같은 광경에 숨이 턱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