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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14. 2024

고양이로 사는 것은

개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 집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에 산더미 같은 명절 음식을 테트리스 하듯 끼워 넣고 온통 검은 것으로 둘러 싸매고 집을 나왔다.      


명절의 분위기는 버겁다. 명절을 홀로 보내는 이들의 외로움에 비하면 나의 이질감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다. 부모님은 별안간 낯선 사람들이 되고 우리 집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만 같다.  

    

결혼 후에 언니의 물건이 가득 쌓인 내 방에서 잘 때면 가끔 가위에 눌리고 헛것을 보았다. 무서웠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집이 부모님의 집이 되고 지금 사는 곳이 우리 집이 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집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산을 오르자 숨이 쉬어진다. 젊은 사람은 여기에 잘 안 오는데 예쁜 아가씨가 참 성실한 것 같다는 덕담을 들었다. 저 아주머니는 어떤 생을 살았기에 처음 보는 예쁘지도 않은 사람에게 그런 예쁜 말을 건넬 수 있는 걸까. 산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글러 먹었다.      


땀을 뒤집어쓴 채로 우리 집이 아닌 곳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를 견딜 수 없어서 머리카락 끝으로 물방울을 뚝뚝 흘리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명절은 혼자가 되기 싫어 발버둥 쳐왔지만, ‘함께’가 안 되는 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따뜻한 라테를 천천히 마셨다. 뾰족하고 딱딱한 것들이 서서히 풀어져서 흘러내렸다. 이번 설에도 쉬이 잠들지 못했고 즐거워야 하는 명절의 압박감과 엄마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과 사랑에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요즘 보기 드물게 텐션이 참 좋았는데 혼자 있을 때의 텐션만 좋았던 거였나?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내게 되었지만,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것 같다.      


‘자네는 고양이 같네. 되도록 개가 되는 게 인생 살기가 편할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신에게 알랑방귀 뀌지 않는 내게 꼬리를 좀 흔들어보라는 말이었음에도 정말로 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잘 안되었다.      


감정을 표현하면 넌더리 난다는 듯 떠났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며 떠났다. 그 중간 지점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어떻게 해야 개가 되지 않아도 인간들과 잘 살 수 있는 건지. 어떻게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인간의 사랑을 온전히 받는 법도 모르겠고 그들과의 적당한 거리가 몇 m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결국 자신의 영역으로 숨어들게 된다.      


연휴 기간 내내 방안에 숨어 있다가 마지막 날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슬슬 기어 나왔다. 집 근처 버거킹에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아이스크림이 계속 목구멍에 걸린다. 나는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가. 혓바닥에서 뒹구는 아이스크림은 달고 차가운데 분명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게 맞는데 이게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살아가야 한다면 그냥 고양이로 살자. 날름날름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우며 멘털을 조금 복구했다. 이러려고 굳이 여길 온 것일지도 모른다. 명절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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