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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Apr 30. 2024

스펙터클 4월

1년에 걸쳐 일어날 일들이 4월에 모두 한꺼번에 일어난 것 같아 

 4개월째 오트밀빵으로 아침밥을 해결하고 있다. 눈 뜨기 두려운 아침에 나를 일으켜 세운 건 팔 할이 이 오트밀로 만든 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두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오늘 아침엔 호두가 빠진 오트밀빵을 만들었고 그것을 씹고 있는 입놀림에서 전혀 흥이 나질 않았다. 행복은 미세한 차이에서 온다는 걸 실감한다. 대단한 행복을 바라며 살아오진 않았지만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포인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 조용히 쿠팡에서 호두를 주문했다.     

 

반영구 눈썹 문신은 3개월에 걸친 3번의 레이저 시술로도 완벽하게 사라지진 않았다. 뭐든 흔적은 남기 마련이다. 레이저가 눈썹을 홀라당 태워버려서 덕분에 요즘 유행하는 모나리자 눈썹을 가지게 되었는데 힙하지 않고 무섭다. 거울을 볼 때마다 놀란다.      


내가 번 내 몫의 돈을 돌려받는 건데 구걸하는 듯한 거지 같은 재산분할 합의의 과정이 드디어 끝났다. 공동명의였던 이 집의 소유권을 포기했고 그는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래 너 가져라. 전세를 내놓자마자 10팀이 이 집을 보러 왔고 나는 내가 살 집을 보러 다닌 지 하루 만에 맘에 드는 집을 계약했고 일주일 만에 계약 파기를 당했고 다시 계약을 하는 난장을 겪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고작 3개월입니다만)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처음이다. 하지만 영어공부를 시작하는 일상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냥 영어공부가 하기 싫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드디어 스쾃을 시작하였다.     


공연을 봤다. 3 년 만에 가는 서울은 똑같고 달랐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내가 느끼는 서울에 사는 이들의 분위기는 부드럽고, 신경질적이고, 촌스럽고, 세련되고, 낡고, 새로운 분위기가 뒤섞여 있는데 뭐랄까 변화하는 속도에 쫓아가기 버거워 보인다고나 할까.     


국화빵 사 먹는 게 도전이었던 여자가 서울까지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뭐든지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기로 맘먹었으므로. 경제적으로 풍족했을 때는 100원도 쓰기 싫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현금이 바닥나고 있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겠다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나는 왜 이 모양인 건지. 언제나 타이밍이 엇박자가 난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였다. 온종일 먹은 거라곤 오트밀빵과 에너지바 1개, 이온 음료 정도라 식욕이 없어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샀다. 거실 소파에 누워 골프 채널을 보고 있는 그가 있었고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끝내 다 먹어 내질 못했다.     


4월이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고 내내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1년에 걸쳐 일어날 일들이 4월에 모두 한꺼번에 일어난 것 같아 지금도 얼떨떨하다. 넘치도록 행복했던 순간과 흉통 전체가 뻐근하게 아파서 싱크대 앞에 서서 괜스레 타이레놀 한 알을 집어삼키던 순간이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야밤에 방 안에서 김혜자처럼 정신 나간 춤을 췄고 뭐든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침대에 납작하게 들러붙을 것 같았다. 살만하면 무너지게 했고 허우적거릴 때 한 줄기 햇살을 비춰줬다. 그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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