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비 May 14. 2024

아침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매우 행복한 것이다.

   연예인 G가 나의 오른손 중지 끝마디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나사를 박아주는 꿈을 꾸고 나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동행복권에서 오른손 중지로만 클릭하여 로또를 구매하는 치밀함을 보였으나 로또는 당첨되지 않았다. 여전히 로또에 거는 기대감은 일주일에 2,000원, 한 달에 10,000원 정도이고 로또를 향한 설렘은 그보다 더 하락하였다.      


요즘의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 고양이와도 같은 상태다. 고함량 카페인 음료를 마신 것처럼 온종일 심장이 콩닥댄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두근거리게 하는지 알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기이한 흥분과 설렘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지가 상당히 오랜만이라 몸이 쫓아가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회사 임원의 개인 작업실을 빌려서 동기들의 20주년 파티를 했다. 언젠가 20주년이 찾아오면 한복을 챙겨 입자는 농담을 했었는데 후배들이 진짜로 한복을 입고 나타나서 창피하고 기뻤다.   

  

노래방에서 노는 것을 ‘저질스럽다’고 표현해 왔는데 무알콜 상태에서 고장 난 마이크를 잡고 유튜브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들의 20주년을 축하해 주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짓은 할 만했고 꽤 즐거웠지만 역시 저질스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너와 함께 20주년을 맞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는 L의 말을 되뇌어 보았다. 만일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이혼을 통보받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불현듯 지금의 삶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경제적, 사회적 안정이 보장된 익숙한 불행 속에서 빈번한 고통과 간헐적인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과 생계가 불확실한 상황이 끌고 올 새로운 고통과 설렘이 있는 삶 중에 무엇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방향을 유지하려고 애썼을 때보다 방향이 틀어져 새로운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조금 더 평온하다고 느낄 뿐이다.   

  

줄곧 행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괴로울 때는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은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행복이라 생각했고 지금은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두렵지 않은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매우 행복한 것이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틈이 생겼다. 평소 음악 취향은 상당히 우중충해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정도가 그나마 밝은 음악일 지경인데 우연히 듣게 된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기본 텐션 값을 놀라울 정도로 올려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예전 플레이리스트를 들었는데 그토록 편안했던 음악들이 참을 수 없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듣던 S가 도저히 못 참겠다고 다른 음악을 듣자고 버럭 소리 지른 심정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다니. 인생 참 알 수 없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원했던 행복의 모습을 내려놓으면 이렇게 절로 다른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 그러니 내려놓을 수 있다면 내려놓고 버티길 바란다. 영원한 것은 없으므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도 언젠가 끝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면 곧이어 행복이 찾아오고 다이어트를 끝내고 먹는 라면 맛이 기가 막힌 것처럼 그 맛은 몸이 어리둥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벅차게 느껴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을 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