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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by 윤비

치과에 가면 내가 몇 년, 몇 개월짜리 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진료 의자 맞은편에 놓인 나의 해골 사진(엄밀히 말하자면 치아 엑스레이) 좌측 상단에 정확히 ‘OOY OOM’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단위를 볼 때면 사람이 아니라 공산품이 된 것 같다. 나이라기보다는 생산 날짜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게 묘하게 좋아서 혼자서 비실비실 웃는다.

엑스레이 사진이 오래되어 이번에 다시 사진을 찍었다. 무언가를 물고 서 있는 모습은 많이 우습다. 병원에서 검사하고 진료하는 동안에는 자아를 잠시 빼놓아야 진료받는 나나 진료해 주시는 분이나 모두가 수월하고 편안해진다. 특히 치과에선 더 그렇다.


10년 전의 치아와 지금의 치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진료해 주시는 분들이 거의 모든 치아를 치료한 상태인데도 그대로 유지했다는 건 그만큼 관리를 잘했다는 뜻이라고 말해주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받아 보는 인정이던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해왔다는 걸 누군가가 알아봐 준다는 건 무엇이 됐든 감동적인 법이다.

별안간 뭉클한 맘으로 치과를 나섰다. 긴 호흡으로 살아보자고 조급한 자신을 달랬다. 아마도 나는 평생 나를 어르고 달래며 살아가겠지. 정말이지 아득하고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봐도 나는 좀 꾸준한 구석이 있다. 20대 때의 체중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즐기며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일 때가 훨씬 많아서 되도록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쉽사리 무엇이든 도전하지 못했었다. 그 일에 얼마나 매달리고 집착할지를 알기 때문에.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운이 좋아서 절로 잘 살아지는 인생 같은 건 없는 걸까.


어쩌면 더 노력하기 싫어서 퇴사했던 것일지도. 그동안 1년만 쉬어보자고 했던 계획이 이혼 때문에 본의 아니게 길어졌다고 변명했지만, 그냥 나의 의지였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력하는 건 넌더리가 났다.


최근 도전하는 족족 실패를 경험하고 있어서인지 18년 동안 쉼 없이 일하고 고작 3년을 쉰 게 엄청난 잘못처럼 느껴졌다. 내겐 고작 3년이었지만 세상에겐 고작이 아니었다. 분명 더 버틸 수 없어서 쉼을 선택했는데 그 쉼이 다시 나의 목을 옥죄어 오고 있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시 꾸준히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다. 정말 싫다.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자격증은 3번 만에 겨우 취득했다. 남들은 쉽다고 하는데 그 남들은 다 천재인가.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는 만만치 않았다. 하필이면 시험을 코앞에 두고 감기몸살에 걸리는 바람에 몸져누웠다가 일어나서 공부하기를 수십 번 반복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불안해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자기 만족감 외에 남는 것이 없었다. 이게 도대체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었고 또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도, 사실 이미 취득한 자격증도 구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긴 공부를 시작했다. 웬만하면 끝까지 이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힘든 길인지 가늠되지 않을뿐더러 구직보다 더 확신이 없는 일에 시간을 버리는 꼴이 될 게 뻔하고 무엇보다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러나 이것 말곤 선택지가 없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일주일째 이미 마음속으로 수십 번 아니 수 백번 공부하기를 포기했다.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한다던데 죽기도 싫고 살기도 싫어서 그런지 악착같아지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어르고 달래는 게 더 급선무다. 나를 믿는다는 보다는 노력하는 지금의 흐름을 타고 흘러가다 보면 어딘가에는 당도하겠지라는 심정으로, 이 길이 아니면 난 죽는다는 심정보단 이 길이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자는 심정으로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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