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고백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따ᅠ간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 테니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3개월 동안 TV 없이 살았던 나는 요즘 TV를 자주 튼다. 영상과 소리를 재현시켜 주는 이 기계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비로소 집으로 들어왔음을 상기시켜 주는 건 TV만 한 것이 없다는 걸 느낀다. TV는 안정감과 포근함을 가지고 있고 핸드폰과는 달리 인간을 덜 쓸쓸하게 한다.
TV에서 익숙한 곡이 흘러나왔다. 한때 내 마음과 같았고 여전히 나의 마음 같은 노래다. 유난 떨지 않고 담담하고 솔직하게 읊조리는 가사와 멜로디가 나의 마음을 온통 휘저어 놓았던. 일종의 고백을 하자면, 아직도 나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는 일이 많고 마음은 늘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계절에 취하기 좋은 시기다. 차가워진 공기를 한껏 들이켜 폐에 담고 묵혀둔 숨을 내뱉으며 걷는다. 시선이 자꾸만 위로 향한다. 떨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그들이 끝이 아니라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곳의 L이사가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에겐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걱정되었다. 그곳에서 30년을 넘게 일해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일하는 게 재밌다고 했었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버텨낼 수 있을까. 회사 밖에서는 그저 노년을 바라보는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회사는 그렇게까지 헌신했던 사람도 단칼에 쳐내버렸다. 나는 단칼에 쳐내버리고 단칼에 쳐 날아간 사람이기도 해서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그것과는 별개로 계절 탓일 수도 있지만.
인연이 끝나면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간다. 그 과정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대체로 고통스럽게 느끼는 사람이라서 나는 좀 유난을 떨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안타깝게도 출근 2주 차 만에 이곳에서도 귀를 찌르는 괴성을 듣게 되었고 그때마다 경기에 걸릴 것 같다. 나의 왼쪽 눈꺼풀의 떨림은 멈출 생각은 없고 입술도 코피도 또 터져버렸다.
이번에는 이 과정을 현명하게 지나치고 싶다. 여태껏 관성적으로 과정이 아니라 종착지라 여겼기 때문에 대체로 고통스러웠다. 머물고 싶을 때 흘러가는 건 괴롭지만 힘들 땐 흘러가는 게 위로가 된다.
2년 전에는 영원히 침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곳으로부터 318km 떨어진 곳에서 떨어지는 단풍을 보고 있다. 배가 고파서 배달 앱을 뒤적이다가 찜해놓은 가게가 이곳으로 배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알림을 보고 실감이 났다. 이제 동부각의 짜장면은 먹을 일이 없지만 다른 짜장면은 먹을 수 있다. 앞으로 짜장면을 못 먹게 된 것이 아니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면 인생이 조금 수월해진다. 결코 쉬워진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떠내려가지 않으려 버티는 것보단 수월하단 말이다. 나는 어디든 흘러갈 수 있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고 할 수 없는 일을 갈망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마음은 말처럼 쉽지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