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이지만 영어공부에 진심인편입니다.
넌 잘한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
우리 부모님은 내가 난독증인지도 모르신다. 어린 시절 내가 받아쓰기를 못해도 글을 잘 읽지 못해도 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무엇보다 초4 무렵부터 성적이 평균 90점 정도 나오기 시작했기에 부모님은 나의 학습에 어떤 결핍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하셨을 것이다. 덕분에 슬프게도 난독증에 따른 학습장애를 나 스스로 극복해야 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늘 '넌 잘한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라고 말씀은 하셨는데 이 말은 나의 자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도 1등이 아닌 내가 늘 부족하게 느껴졌고 기본적인 글자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라고 전적으로 믿기 힘들었다. 겉으론 씩씩해 보이고 당당해 보였지만 어린 나에게 어른의 말은 진실과 같은 무게가 있어 아무리 아니라고 거부해도 실패의 두려움을 맞설 때마다 아버지의 말은 내 귓가에 맴돌며 나의 자신감을 훔쳐갔다.
난 내가 좀 더 일찍 난독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한다. 왜냐하면 난독증의 문제는 생리적 메커니즘의 문제이지 개인의 노력이나 지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죄가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가끔은 부끄러워했다. 난독증은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빈틈을 만들었고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스스로에게 불완전한 사람이란 자아상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재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쓰면서 내가 마주한 익숙한 두려움을 마주 하면서이다. 패션분야에서 일하던 마흔이 넘은 경단녀인 내게 허락된 일은 많지 않다. 960점이라는 토익점수와 학원 아르바이트 경력을 가지고 영어유치원에 이력서를 내려다 내가 음운을 파악하는 파닉스적 기술이 부족한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가 일반 영어학원에 이력서를 쓰려다가도 나 쉬운 단어 철자도 많이 틀리는데 관찮을까하고 고민하고 있는 내가 조금 웃펐기 때문이다.
난독증의 공포
어린 시절 나는 유독 책 읽는 것이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난독증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을 만큼 증상에 대한 정보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내가 받아쓰기를 잘 못하고 글을 유창하게 읽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원인을 한글을 배워야 할 시기에 적절한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적기가 지난 다음엔 내가 열심히 한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받아쓰기의 공포였는데 이 공포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습의 방법이 달라졌기에 나는 받아쓰기 공포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책 읽기의 공포는 고등학생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처음 보는 글은 한 줄을 실수 없이 읽기가 어려울 만큼 나의 읽기 실력은 형편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국어나 사회같이 교과서를 읽고 수업을 시작하는 과목이 있는 날이면 꼭 전날 집에서 교과서의 글자들이 눈에 익숙해질 때까지 읽기 연습을 하고 등교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창하게 읽은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심리적 방어벽을 만들 수 있었다. 미리 읽어보지 않은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문학소녀라기보다 씩씩한 육상소녀에 가까웠던 나에게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긴장을 하면 실수를 하게 되고 실수를 하다 보면 더 긴장이 되는 악순환에 빠져 벗어날 수 없는 부끄러운 상황을 이미 충분히 반복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 속에서 손글씨를 쓰는 상황이 오면 철자를 틀릴까 봐 필요 이상의 긴장을 하고 이 경험이 계속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피할 수 없는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해 저항감이 생겨 다양한 문제를 초래했다. 기본적으로 혹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심리적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의 글씨가 콩알만 한 이유 중 하나는 난독증에 따른 심리적 위축이 아닐까 한다.
난독증의 메커니즘
난독증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인식한 글자 정보를 소리 정보로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말하기와 달리 글을 읽는 행위는 자연발생적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뇌에 서로 다른 부분에서 자원을 모집하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뛰어난 뇌도 있고 평균적인 뇌도 있으며 평균 이하의 뇌도 있다. 평균 이하의 뇌가 바로 난독증에 해당된다.(Kristen Pammer, Scientifica Volume 2014, Article ID 802741)
난독증의 증상
과거 나는 글자를 그림처럼 인식해서 통으로 외우는 아이였다. 그래서 음운 별로 단어를 인식하기보다 그 단어처럼 인식이 되는 글자의 전체 모양을 보고 소리를 때려 맞추는 식이다. 익숙한 모양을 보고 미리 기억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마치 한문처럼 한글을 익혔다. 때문에 해리포터처럼 외국어 이름이 많이 나오는 소설책은 등장인물을 이해하는데 너무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소비했기에 소설에 푹 빠질 수도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율리우스 시저의 이름이 카이사르인지 카르사이인지는 지금도 헷갈린다. 그리고 코끼리를 꼬리끼라고 읽는 것처럼 바쁜 인지과정에서 단어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해서 소리 내는 경우도 많았다. 부족한 받아쓰기 실력과 더불어 이 모든 것은 난독증의 증상이다.
난독증을 가진 아이들을 조사해보면 조사를 빼먹는 일이 많다고 한다. 국어에서 조사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조사가 달라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의식적으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핵심어뿐만 아니라 조사까지 챙기며 글을 읽다 보면 속도는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수능뿐만 아니라 토익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생각해보자. 제시간에 다 읽기에 지문의 길이와 예문의 길이가 어마어마하다. 중학생 때까지 나는 교과서 이외의 책은 읽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만화책도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고1 학기 초 모의고사 중 언어영역에서 55문제 중에서 15문제나 풀지 못해 엄청난 충격을 받는 일이 생겼다. 그만큼 난독증이 있는 사람에겐 긴 지문을 빨리 소화라는 것은 묘기에 가까운 일이다.
나의 결핍은 욕망이 되어
학창 시절 나의 절친은 교내에서 책을 아나운서처럼 잘 읽기로 소문난 친구였다. 한글 발음뿐만 아니라 7살부터 시작한 튼튼 영어의 힘으로 영어 발음까지 좋았다. 30년 전 유창한 미국식 발음이 귀했던 시절이라 친구의 버터발음은 더욱 빛이 났다. 내 눈엔 정돈된 호흡으로 유려하게 책을 읽는 친구의 모습은 마치 내가 꿈꾸던 지적이고 우아한 커리어 우먼 같아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그 친구처럼 책을 잘 읽고 영어를 잘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런 결핍이 있기에 나는 마흔이 넘은 주부가 되어서도 독서와 영어공부를 진심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날 아침 아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킨 후 산책을 하는 동안 어디에 이력서 넣어야 하나 생각을 정리하던 순간 왜 나는 960점이나 되는 점수를 가지고도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난독증은 평생 치부와 같았다.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닐 때에도 난독증은 완벽하게 잘하고 싶은 내게 계속해서 빈틈을 만드는 나의 약점이자 나를 경쟁에서 뒷처진 실패자로 만드는 결함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능력 만능주의 사회에서 이 모든 결과가 나의 노력 부족으로 난독증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해 발생한 것 같아 더욱 무기력해졌다.
책 1장을 틀리지 않고 읽기 위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소리 내어 책 읽기 연습을 했다. 나에겐 여전히 중학생 수준의 영단어도 틀리는 생리학적 결함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해 마흔에 토익 960점을 받는 성실함도 있다. 그동안 나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가 틀렸음을 증명하고 내가 온전히 능력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 성장보다 결과에 집중한 것은 아닐까 한다.
잘한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난독증이 있음에도 토익 960점 받은 사람이 아닐까. 나는 내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난독증은 나의 부족함의 증거가 아니라 성실함의 증거다. 나는 난독증으로 인한 나의 결함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온 나의 시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애썼다. 시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