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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야채 Aug 30. 2023

2023년의 핵심 키워드 : '조용함(Quiet)'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는 재밌는 기사가 올라왔다.


코로나~엔데믹 시기, 그러니까 근 2년간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던 '조용한 퇴사' 트렌드가

최근엔 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조용한 해고'로 상황이 180도 반전돼 나타나고 있다는 뉴스다.


기업들이 성과나 실적이 낮거나, 업무에 적극적이지 않은 직원들에게 '열심히 일 안하면 자를지도 몰라' 정도로 슬쩍 눈치를 주고 있다. 회사가 직원에게 커리어 발전 기회를 제공하지 않거나, 핵심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맡기거나, 말도 안되는 성과 목표를 제시해 견디지 못하고 제발로 나가게 만드는 방법.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용법상 함부로 직원들을 해고시키지 못하니 책상을 없애거나 지방으로 좌천시키는 시스템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만의 관행인 줄 알았던 조용한 해고(?)가 아디다스, 어도비, IBM 등의 미국의 대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인력을 업무에 '재배치'한다.


IBM에서 2년간 업무 재배치를 받은 수석 영업 전문가 매트 콘래드는 WSJ에 이렇게 말했다. "회사가 '당신이 해고되지 않게 우린 최선을 다했다. 당신 역시 최선을 다해 일하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회사의 메시지에 위협을 느꼈고, 절대 먼저 퇴사하지 않기 위해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 입장에서 '재배치'는 직원들을 위한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GM, MS 등의 기업 경영 코치인 로베르타 매튜슨은 "업무 재배치는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이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니 퇴사하고 싶지 않으면 그 임무를 맡는게 낫다"라고 WSJ에 전했다.


업무 재배치는 낮은 급여나 업무 레벨이 지금보다 낮은 직책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된다.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도는 부서로 갈 수도 있다. 이 때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컨설팅펌 콘페리의 인재개발 팀장 콘페리는 "재배치를 당했을 때 직원들은 담당자에게 자신의 커리어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은 고용과 해고가 자유롭기 때문에 직원 입장에서 손해보는 재배치를 당하더라도 법적인 구제 방법은 없다. 다만 블랜차드&워커의 안젤라 워커 변호사는 "재배치가 인사 보복성 조치였고 업무적 차별이 있었다는 걸 직원이 입증할 수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용한 고용'도 기업의 새로운 트렌드다. 새롭게 신규 직원을 뽑는 대신 기존에 있던 근로자의 역할을 전환해 중요 업무를 맡기는 식이다. 이런 경우, 보수가 올라가고 핵심 직책을 맡는 셈이다. 


재밌는 사실은 고용시장에서도, 패션시장에서도 '조용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패션업계에서는 지금 '올드머니룩' 이라고 해서 '조용한 럭셔리'가 유행이다.

노골적인 브랜드 로고나 화려하고 과시적인 아이템 대신 '아는 사람만 아는' 럭셔리 패션을 장착하는 것이다. 단정하면서도 심플하고, 기본에 충실하면서 핵심적인 쥬얼리 같은 곳에 고급스러운 멋을 주는 방법이다.


고용시장과 패션시장 모두 '조용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주목해야 할만한 상황인 듯 싶다.

그만큼 앞으로의 아무도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젠 전세계적으로 코로나도 종식되고 엔데믹도 끝나가는 실정에서

세계 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해졌다.


이 가운데 누군가 나서서 선명하고 확실한 목소리를 내기보단, 

한걸음 물러나 침묵하며 조용히 자기 할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은 '침묵의 나선이론 (Spiral of Silence Theory)' 이라는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이 발표한, 정치학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론이다.


하나의 특정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 소수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침묵하고 있었을 뿐, 

나중에 드러난 결과로 보면 다수였다는 반전이 드러난다는 이론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세계는 많은 자금 유동성을 확보했고, 

그 이후 경제의 빈부격차, 인플레이션은 더 극심해졌다. 

그 많던 SNS의 오마카세, 샤넬, 명품카 열풍은 싹 정리되는 모양새다.


그때의 요란함과 트라우마를 경험한 인류는 이제 '조용함'을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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