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일을 그려보라는 말에 딸아이가 무언가를 쓱쓱 그렸다. 나는 막연히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갔던 일이나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은 일들을 그리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딸은 작년 3월에 태어난 동생이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 드디어 집에 왔던 그날을 반짝이게 표현했다. 그림엔 속싸개로 꽁꽁 싸맨 동생과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무수히 많은 별이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동생이 밉다고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운 적도 많았는데 그래도 좋았나 보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선생님이 웃으신다. 그런 내용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선생님이 딸에게 어떤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조리원에서 한 달 만에 집에 와서 정말 행복했다고 엄마가 정말 많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단다. 갑자기 울컥했다. 아, 내가 보고 싶었구나. 그 마음을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셋째를 낳고 나는 가족들의 편안한 수면을 위해 만만의 준비를 다 했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이백여 일이 될 때까지 수면 부족과 싸워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선택이 조리원에서 한 달 살기였다. 아이를 세 번이나 낳았지만, 신생아 돌보기는 너무도 어렵고 아무리 해도 손에 익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편과 나는 우리 모두의 생명 연장을 위해 가능하면 조리원에 오래 있기로 결의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뒤에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많이 받기로 했다. 돈이 많으면 입주형 산후도우미를 쓰고 싶었으나 불가능하니 밤엔 내가 아이를 보고 낮엔 무조건 자겠다고 했다. 어차피 수유해야 하는 것이 나이기에 다른 가족은 밤에 푹 자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산후도우미가 오면 쉴 수 있으니 다른 가족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졸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기 울음소리에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밤에 따로 자기로 했다. 서재에 싱글침대를 들여놓고 아기 수유 쿠션도 바로 옆에 붙여놨다. 아이가 깨려고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분유를 탄 뒤, 울기도 전에 기저귀를 갈고 먹였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셋째의 밤잠 습관을 들이는 것도 내 목표였다.
Vincent Willem van Gogh. The Starry Night. 1889.
이런 나의 원대한 계획과는 달리 둘째는 도통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밤 수유를 위해 젖병에 분유를 소분해서 조립해 놓는 사이, 서재 바닥에 자기 이불을 깔아놓고 누워있었다. 안방 침대에 가서 푹 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아빠랑 자야 엄마가 편하다고 강제로 안방으로 들여보낸 날엔 중간에 깨서는 이불을 들고 나에게 오기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남편은 자기는 좀 피곤해도 괜찮으니 다 같이 자자고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딸이 어떤 생각을 하고 나에게 찾아왔는지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이럴 거면 서재에 침대를 왜 들여놓은 건지 모르겠다고 괜히 툴툴댔다. 나만 희생하면 가족 모두가 편히 잘 수 있는데 왜 다들 같이 자자는 것인가!
그렇게 셋째의 50일이 지났고 밤에 한 번 정도는 5시간을 내리 푹 자는 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또 100일이 지나고 200일이 지나면서 막내도 드디어 10시간씩은 밤에 푹 자는 날이 와 가족 침대에 자기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신경은 막내가 아빠와 형, 누나에게 깔리지 않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오른쪽 끝자리에 막내를 배치하고 그 옆에 내가 누웠다. 그러면 딸은 나의 왼편에 와서 자리를 잡고 토닥토닥 재워달라고 귓속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동생이 자면 해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딸부터 재우면 막내가 잠을 자지 않고 놀 궁리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막내를 재운 뒤 딸을 재워주려고 고개를 돌리면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기다리다가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정돈해 주는 내 손은 언제나 미안함과 속상함으로 가득했다.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도 모른 채 아이를 너무 많이 낳은 것은 아닌가 한참을 자책했다.
그림은 총 2장이었다. 최근에 가장 기뻤던 일을 그린 것 옆에 가족의 일상을 그린 그림도 놓여 있었다. 나는 그림을 보고 소리 내서 웃었다. 우리 가족의 일상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소파에 옆으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켜놓고는 스마트폰을 하고 있고 엄마는 동생과 침대에서 자고 있다. 나도 모르게 정말 나쁜 부모네라는 소리가 나온다. 나의 웃음기가 싸늘하게 사라진 것은 딸이 동떨어진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그림을 보고 난 뒤였다. 많이 외로웠나 보다 싶어서 또 슬퍼졌다. 선생님이 또 그림 설명을 해주신다. 딸은 자기랑 놀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속상하다는 말 대신 엄마는 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봐야 해서 너무 힘들어한다고 그래서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딸의 중심은 언제나 나였나 보다.
며칠 뒤, 사찰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게 됐다. 딸은 자기도 소원을 쓰고 초를 켜고 싶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한 뒤 양초 하나와 소원을 적고 붙일 종이를 건넸다. 아이가 열심히 무언가를 써서 가져오기에 좋은 자리에 초를 세우고 심지에 불을 붙여주었다. 그때 딸이 쓴 소원을 읽게 됐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 문장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